최근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2022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청년 일자리는 28만 5000개 감소했다. 이 가운데 94%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줄었다. 정보서비스업은 31.4%, 출판업은 27.4%, 컴퓨터 프로그래밍업은 16.6%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이들 업종에서 50대 일자리는 증가했다.
그렇다면 왜 청년인가. AI가 빠르게 대체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신입사원이 일하며 배우던 초급 업무이기 때문이다. 자료를 찾고 보고서 초안을 만들고 기초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이다. 기업은 숙련된 직원에게 AI를 붙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신입을 뽑아 몇 년 동안 가르칠 이유는 줄어든다. AI는 경력자에게 날개가 되지만 노동시장 입구에 선 청년에게는 사다리의 첫 칸을 걷어내는 위협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에 따르면 AI 영향을 많이 받는 직종에서 22~25세 청년 고용은 AI 노출도가 낮은 직종보다 뚜렷하게 부진했다. 경력자에게서는 이런 격차가 나타나지 않았다. 고용조정도 기존 직원의 해고보다 신규 채용 감소를 통해 주로 나타났다.
여기에 한국 노동시장의 특수성이 겹친다. 해고 제한과 단체협약 등 기존 고용보호제도는 내부노동시장 재직자를 강하게 보호한다. OECD도 정규직 해고의 높은 비용과 불확실성이 기업의 청년 정규직 채용을 제약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은 기존 인력을 내보내는 데 따르는 법적·노사관계상 부담이 큰 만큼 AI로 생산성을 높이면서 신규 채용을 줄이기 쉽다. 보호는 작동하고 있는데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은 늘어나는 역설이다.
이 지점에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개념은 산업전환의 비용을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에게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노동운동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후 재교육과 소득보전, 새로운 일자리와 지역사회의 전환까지 아우르는 원칙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AI 시대에는 전환의 비용이 일자리를 잃는 사람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으로 이동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산업전환 과정에서 재직자의 고용안정과 재교육, 직무전환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정의로운 전환이 이미 노동시장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의 보호에 머물 때다. 재직자는 고용과 직무전환의 기회를 보장받는데 정작 신규 채용이 줄어 노동시장 밖의 청년이 입구조차 통과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 전환을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청년은 해고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고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상실은 노동분쟁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노사협의도, 단체교섭도 없다. 신입 열 명을 뽑던 기업이 다섯 명만 뽑을 뿐이다. 한 사람의 해고는 사건이 되지만 채용되지 않은 수천 명의 청년은 사건조차 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경력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초급 업무는 신입사원이 경험을 쌓으며 판단과 책임을 배우는 훈련장이었다. 지금은 AI가 수습사원이 된다. 그렇다면 청년은 어디에서 경력을 쌓아 경력직이 되는가. 이것은 오늘의 고용문제이자 내일의 숙련 형성 문제다.
정의로운 전환의 범주를 넓혀야 한다. 재직자의 고용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환으로 일자리를 잃는 사람뿐 아니라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도 봐야 한다. 노동조합도 조합원의 현재 일자리를 지키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 세대가 들어올 문을 교섭의 시야에 넣어야 한다. 정부는 직업훈련과 취업지원을 넘어 청년 채용과 노동이동을 막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까지 함께 손봐야 한다.
AI 전환을 막을 수는 없다. 막아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누가 그 기회를 얻고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하느냐다. 기술은 중립적이지만 그 결과까지 중립적인 것은 아니다. 정의로운 전환은 이미 열차에 올라탄 사람만 안전하게 다음 역으로 데려가는 일이 아니다. 아직 승강장에서 기다리는 청년에게도 탈 자리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말하는 정의로운 전환은 보호받는 사람들만의 꿈으로 끝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