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도 아는 사람만 받나”…李, 청년연금 신청주의 질타

정치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20일, PM 02:50

[이데일리 김상윤 황병서 기자] “눈치 빠르고 부지런하고 시간이 있는 사람만 혜택을 받는 것 아닙니까.”

이재명 대통령이 내년 시행을 앞둔 ‘생애 첫 연금보험료 지원사업’의 신청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국민의 노후 준비를 돕겠다면서 정작 제도를 알고 신청한 사람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은 ‘실질적 불평등’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부 국민이 신청하지 못할 가능성을 사실상 전제로 제도를 설계했다면 국가가 국민을 기만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생애 첫 연금보험료 지원사업과 관련해 “신청하지 않으면 안 해준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 실질적인 불평등을 야기하는 일”이라며 제도 운영 방식에 대한 토론을 제안했다.

정부가 내년부터 도입하는 이 사업은 청년들의 국민연금 조기 가입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다. 2027년 18세가 되는 2009년생부터 적용되며, 국민연금 보험료를 낸 이력이 없는 청년이 18~26세 사이에 신청하면 국가가 생애 첫 1개월분 보험료를 대신 내준다.

지원액은 1인당 약 4만2000원이다. 2027년 기준소득월액 하한액 전망치인 42만원에 보험료율 10%를 적용한 금액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내년도 예산안에 189억원을 신규 편성했다. 이미 보험료를 납부한 이력이 있는 청년에게는 보험료 지원 대신 가입기간 1개월을 추가로 인정한다.

지원액 자체는 크지 않지만 장기적인 효과를 노린 정책이다. 현행 국민연금은 가입기간이 길수록 장래 연금 수령액이 늘어나는 구조다. 18세에 처음 보험료를 납부해 가입 이력을 만들어두면 이후 학업이나 군 복무 등으로 보험료를 내지 못한 기간에 대해서도 일정 요건에 따라 추후납부가 가능해진다. 청년 시절 만들어둔 가입 이력이 수십 년 뒤 연금 수령액을 높이는 발판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혜택을 받으려면 청년이 직접 국민연금공단 지사를 방문하거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홈페이지 등을 통해 신청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같은 나이, 같은 조건의 청년이라도 제도를 알고 적극적으로 신청한 사람만 혜택을 받는 구조가 과연 공정하냐고 반문했다. 정보 접근성이 좋고 행정 절차에 익숙한 사람은 혜택을 누리는 반면, 제도 자체를 모르거나 신청 시기를 놓친 사람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대통령은 신청주의 이면에 깔린 재정 논리를 문제 삼았다. 이 대통령은 “그렇다고 해서 다 지원해주면 재정의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일부가 포기를 하거나 신청을 못 할 것을 전제로 제도를 운용하는 것”이라며 “이는 국가가 국민을 기만하는 것 아닌가. 이게 도덕적인 국가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국민에게 혜택을 약속해놓고 실제로는 일부가 신청하지 않을 것을 기대해 예산 부담을 줄이는 구조라면 정책의 취지부터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복지제도의 존재만큼이나 국민이 그 혜택에 실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이다.

이 대통령은 재정 부담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대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지원 범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재정 부담이 너무 크다면 최저 소급 연령을 감당이 가능한 나이까지로 정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일률적인 지원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이 대통령은 “국민에게 유리하지만 결국 재정 문제 때문에 아닌가. 뭘 그렇게 어렵게 얘기를 하나. 솔직히 얘기하시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발언으로 내년 시행을 앞둔 제도의 신청 방식이 재검토될지 주목된다.

생애 첫 연금보험료 지원은 지난 4월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5월 26일 공포된 국민연금법 개정에 근거한다. 내년 1월 1일 시행되는 국민연금법 제100조의5에는 18세 이상 27세 미만 국민이 연금보험료 지원을 신청한 경우 국가가 보험료를 지원하도록 명시돼 있다.

단순한 행정 절차 변경을 넘어 신청 요건 자체를 없애거나 자동 지원 방식으로 전환하려면 관련 법령과 재정 소요에 대한 추가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이미 편성한 189억원의 예산이 어떤 신청률과 지원 규모를 전제로 산정됐는지도 향후 쟁점이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의 문제 제기는 국민이 스스로 찾아 신청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존 복지행정 전반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지원제도가 아무리 촘촘하게 마련돼 있더라도 이를 알지 못하거나 신청하지 못해 혜택에서 소외되는 국민이 있다면 제도가 실질적인 형평성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앞서 지난 8월에는 국내에서 단기간 근무한 외국인이 국민연금 가입 이력을 바탕으로 과거 기간의 보험료를 추후 납부해 노령연금 수급 요건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해외에 거주하는 가족에게까지 부양가족연금이 지급될 수 있다는 점도 형평성 논란을 키웠다.

당시 이 대통령은 제도의 허점이 드러나면 신속하게 보완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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