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업계 “연내 주52시간 특례”…李 “기존 제도로 보완 못하나”

정치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23일, PM 03:58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반도체업계의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주52시간 근로시간 특례 요구에 기존 제도를 보완해 해법을 찾자고 주문했다. 초과근로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건강권 보호를 전제로, 별도 특례를 만들어야 할 만큼 현행 제도의 한계가 분명한지 먼저 따져보자는 취지다.

이는 산업계의 연구개발 속도전과 노동계가 오랜 기간 확보해온 노동시간 단축의 원칙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시행령과 행정 절차 개선을 타협의 경로로 제시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힘센 쪽이 이기는 방식”으로 규제 문제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며 노사 간 불신을 걷어내기 위한 정부의 조정을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합리화위원회 2차 전체회의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합리화위원회 2차 전체회의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승인 절차 문제라면 신속하게”…특례 필요성 따져 물은 李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규제합리화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서 반도체산업협회 측으로부터 핵심 R&D 인력의 근로시간 특례를 연내 실현해달라는 건의를 받았다.

협회 측은 반도체산업의 국가 간 경쟁에서 시간이 중요하다며 일반 제조공정과 달리 R&D는 며칠씩 집중적인 토론과 몰입 연구가 필요한 프로젝트 중심의 특성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대화와 국회 입법 논의를 거쳐 업계의 숙원인 근로시간 특례를 조속히 도입해달라는 요청이다.

이 대통령은 먼저 추가 노동에 대한 보상 원칙부터 명확히 했다. 그는 “특례법을 만들어가지고 추가 노동에 대해서 보상을 안 하는 걸 구상하면 안 된다”며 “그건 절대 안 된다. 그런 것은 후퇴”라고 말했다.

협회 측이 “돈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그거는 대전제로 서로 인정을 하고 얘기를 해야 진척이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계가 특례를 임금 지급 없이 초과노동을 시키려는 제도로 의심하는 만큼, 기존 제도에 따른 가산임금 지급 원칙을 공개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기존 제도로 업계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지 따져 물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반도체 R&D 분야의 특별연장근로 활용 범위를 이미 넓혔다고 설명하자 이 대통령은 협회 측에 “현재 노동부가 한 조치 이상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냐”고 질문했다.

고용부는 지난해 3월 관련 지침을 마련해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의 특별연장근로 1회 인가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고, 심사를 거쳐 6개월을 추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첫 3개월은 주 최대 64시간, 이후 3개월은 주 최대 60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다. 다만 근로자 건강 보호를 위해 특례 활용 시 인가기간 중 건강검진을 의무화했다.

협회 측은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사전 인가와 고용부 승인 등 행정 절차를 애로로 들었다.

이에 이 대통령은 “그거 포괄적으로 미리 해주면 되지 그것 때문에 새로운 제도를 만들 필요까지 있나”라고 반문했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더라도 근로자 동의 등의 절차는 필요하다며 “노동부에서 좀 더 선제적으로 신속하게 해주면 그 문제점을 대체적으로 보완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특례 입법 자체에 대한 찬반을 결론짓기보다 현행 제도의 운영 방식을 손질해 해결할 부분부터 찾으라는 주문이다. 이 대통령은 “기존 제도 시행령을 수정하거나, 아니면 절차를 쉽게 하거나, 이런 방법이 있는지도 서로 깊이 논의해보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집중근로에도 한계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 쟁점은 마지막 남은 건 건강권 문제인 것 같다”며 “하루에 20시간씩 5일 동안 연구하면 사람이 살 수 있겠느냐”고 했다. 추가 수당을 지급하더라도 노동자의 건강을 해칠 정도의 장시간 노동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김 장관은 “기존 제도를 활용하는 데 기업이 어떤 애로점이 있는지 잘 살펴보고, 신뢰를 구축해서 꼭 결과를 도출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합리화위원회 2차 전체회의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합리화위원회 2차 전체회의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와 충돌…“불신 걷어내야”

근로시간 특례 논의가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는 배경에는 노동계가 오랜 기간 싸워온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가 놓여 있다. 노동계에 주52시간제는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해 확보한 보호 장치다. 산업 경쟁력을 이유로 예외를 허용하는 것이 그간의 성과를 되돌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경계가 작용하는 사안이다.

업계에는 연구개발의 속도와 유연성 문제지만, 노동계에는 노동시간을 줄여온 원칙을 지킬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특정 연구 인력을 대상으로 한 제한적 조치라는 설명만으로는 예외가 다른 직종과 산업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해소하기 어렵다. 추가 보상과 당사자 동의를 넘어 적용 대상과 기간, 건강권 보호 장치가 중요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이 같은 갈등의 밑바닥에 누적된 불신이 있다고 진단했다. 민주당 대표 시절 공개 토론에서 초과근로에 대한 추가 임금 지급을 전제로 양측이 동의했지만, 노동계는 그 약속이 지켜질지 믿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별로 차이가 없더라. 결국 대화를 해보니까”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안 됐다. 이게 근본적으로 깔려 있는 불신”이라고 말했다. 앞선 토론에서도 “극한적으로 대립할 만큼 심각한 차이가 있는 것 같지가 않다”며 고용부의 적극적인 조정을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규제합리화 전반으로 확장했다. 규제로 이익을 얻는 쪽과 손실을 보는 쪽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대로 강행할 거냐 말 거냐 싸워서 힘센 쪽이 이기는 방식으로 결정될 게 아니다”라며 대화로 부작용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보완을 해도 도저히 커버할 수 없는 영역이 있으면 좀 접든지, 변경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공장 노동자의 행동 데이터 수집도 사례로 들었다. 데이터가 사생활 침해나 노동 감시용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의심을 해소하지 못하면 활용을 둘러싼 갈등 역시 풀기 어렵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규제합리화도 결국 국민들 간의 소통과 신뢰의 문제가 가장 근본”이라며 “이해관계 조정을 위한 허심탄회한 토론, 조정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용진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도 노사 양측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노동계에는 “지키려고만 하고 철옹성을 쌓다 보면 자기들이 갇힐 것”이라며 적극적인 협상을 주문했다. 경영계에는 정부의 규제 개선 의지를 “숙원사업 종합선물세트”로 활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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