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국이자 자원이 부족해 수출로 돌파구를 찾아온 역사는 우리와 닮았다. 하지만 걸어온 길은 사뭇 달랐다. 덴마크는 위기 때마다 사회적 연대와 고통 분담을 선택했다. 1970년대 석유파동 때 재생에너지로 눈을 돌려 세계적 에너지 강국이 됐고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는 보편적 복지의 기틀을 마련했다. 반면 한국은 제조업과 첨단 산업을 극대화하며 성장을 이끌었다. 두 나라는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가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온 셈이다.
오늘날 두 길은 미래를 향한 교차로에서 만난다. 덴마크의 풍력발전과 친환경 선박 전환에 한국의 원자력, 조선, 반도체 기술이 함께하고 있으며 올해 덴마크 혁신기금은 바이오솔루션, 양자, 우주 기술 분야의 연구 협력 3개국 중 하나로 우리나라를 포함시켰다. 우리 대사관도 덴마크 공과대학과 함께 에너지 세미나를 공동 개최했고 양자 과학의 발상지인 덴마크의 닐스 보어 연구소와는 양국 과학자들이 양자 연구 현황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덴마크인들은 한국 드라마를 밤새 보았다거나 자녀들이 케이팝 팬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고 있고 대사관 한국주간 행사에서 K-POP 댄스에 열광하는 덴마크 청소년들과 한복을 입어보기 위해 늘어선 긴 줄은 양국 미래세대가 이미 마음으로 깊이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성공 비결을 물으면 덴마크인들은 공통적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 바탕에는 유연한 고용과 강력한 사회안전망을 결합한 ‘유연안정성(Flexicurity)’이 자리 잡고 있다. 기업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사회는 실직자의 재도전을 든든하게 받쳐준다.
이러한 ‘실패해도 괜찮다’는 안전망의 가치는 청년들을 위한 교육제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대학생들이 등록금 걱정 없이 생활비를 받으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은 경제적 격차가 배움과 도전의 장벽이 되지 않도록 막아준다. 청년들은 당장의 불안 대신 장기적인 삶의 가치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게 된다. 복지제도와 경제적 성취 중 무엇이 먼저인가라는 논쟁을 넘어 덴마크의 복지와 교육은 과감한 혁신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신뢰의 기반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최근 덴마크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극권 안보 정세 변화 등으로 국방 예산이 대폭 증액되고 고령화 등으로 복지 재정에도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일부 글로벌 기업에 집중된 경제를 다변화해야 하는 엄중한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덴마크는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혁신적 산업 경쟁력을 발휘하며 유럽 내에서도 독보적인 경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복지를 유지하려는 끊임없는 체질 개선과 노력이 단단한 경제적 기반과 결합하여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물론 최고 50%가 넘는 소득세와 25%의 부가가치세를 재원으로 하는 이 모델이 보편적 정답일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적 안전망과 교육이 어떻게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어내는지 보여주는 덴마크의 경험은 선진국에 진입해 다가올 100년을 고민하는 대한민국에게 유의미한 시사점을 준다. 또다시 찾아온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돌파구를 찾는 우리나라와 덴마크를 보며 우리가 펼쳐볼 만한 참고서의 제목으로 ‘가보지 않은 길, 덴마크’를 붙여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