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규 국립외교원장은 지난달 30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국제질서가 격변하는 시기에 역대 우리 정부들이 그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과거 자유주의 가치를 강조하며 수직적인 질서를 강조했던 미국이 동맹국가들에게 대가를 받으며 ‘수평적’인 모습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우리도 새로운 답을 찾아내야 한다는 게 김 원장의 생각이다. 김 원장은 변화하는 미국의 대외전략이 우리 정부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도 봤다. 조선·반도체·배터리·원자력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전략산업을 활용하면 미국과의 협력에서 한국의 국익을 확보할 공간도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김흥규 국립외교원장 인터뷰
-최근 정보공유 제한을 시작으로 한미간 이견이 노출되며 동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한미동맹은 원래 분단된 한국, 한반도를 위한 동맹이었다. 그런데 이제 미국은 전략경쟁 구도 속에서 한미동맹을 대중국 억제 동맹으로 가져가려 한다. 그렇지만 한국은 중국과 무조건 등질 수도 없다. 주변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국 억제전략을 그대로 따라가면 동맹에서 얻는 이익을 넘어서는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과거에는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패권질서를 그대로 따르면 됐고 한미 간 이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양국의 이익에 조금씩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게 기본 문제다.
-그렇다 해도 전시작전통제권이나 대미투자부터 쿠팡 같은 개별기업까지 다방면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당연하다. 미국도 한국도 지금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미국도 국제질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정답을 찾지 못한 것 같다. 오바마 정부까지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조하다가 트럼프 1기에는 중국과의 디커플링과 전면적 경쟁을 추진했다. 지금은 또 그게 어렵다는 점을 깨닫고 중국과의 건설적인 전략적 안정을 모색하는 것 같다. 미국 스스로도 국제질서에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설정할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우리도 이에 맞춰 대응해야 한다.
한국도 계속 변했다. 문재인 정부는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운전자론을 추진했고 비용을 줄이려 했다. 윤석열 정부는 완전히 친미적으로 우리의 이익과 가치를 미국과 결합시키려 했다. 그러나 모두 잘되지는 않았다.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면서 우리의 국익을 확보하기 위해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실용외교다. 두 나라 모두 변화하는 가운데 사소한 의견 차이, 터뷸런스(난기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미간 이견을 조정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긴밀한 전략적 소통이 필요하다. 양국 모두 변화하고 있으니 서로 대화하면서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한국과 미국 모두 인지하고 있는 공통점은 한미동맹이 중요하고 함께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미국에서도 국제질서를 보는 눈이 달라졌을지언정, 한국과의 동맹을 포기하려는 움직임은 결코 없다. 서로 절실히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확인하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 속에 상대방에게 가졌던 인식과 기대치를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국이 미국과 이견을 줄이고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 있나.
△과거 미국은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었고 이를 국제사회에서 구사하려는 의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외부세계에 투입하는 힘과 역량을 조절하면서 자국의 이익부터 챙기는 전략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공백이 발생했다. 다행히 한국에는 미국의 자국 중심 전략을 도울 수 있는 역량이 있다. 조선업과 반도체, 배터리뿐 아니라 군수 분야와 원자력에서도 강하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미국을 도와줄 역량을 가진 국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분야를 모두 펼쳐놓고 하나하나 맞춰가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도 당연히 갈등과 이견은 있을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이제까지 말을 잘 들었는데, 왜 이러지’라고 생각할 수 있고, 한국은 ‘미국 때문에 미래 성장역량이 약화될 수 있는데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서로 등을 돌린다면 한미동맹의 미래는 없다. 우리도 동맹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국내적으로 설득하면서 미국이 한국에 대해 가졌던 기존의 인식과 기대치를 바꿔나가야 한다.
-말씀하신대로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주변국도 중요하다. 한미동맹을 중심에 두면서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는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한미동맹이 우리 외교안보와 경제의 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미일 협력도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한 만큼,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전쟁 후를 대비해 러시아와 협력할 수 있는 공간도 생각해야 한다. 러시아는 생각보다 첨단기술에 대한 수요가 크다. 한국이 도울 수 있는 분야가 있을 것으로 본다.
한중관계는 앞으로 2년 정도가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 중국은 일본 견제에 집중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일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과거에는 관계가 나쁘더라도 물밑에서는 교역과 협상, 고위급 방문이 이어졌다. 그런데 최근 중국 정부는 경제 상당 부분을 차단하며 일본을 압박하는 모습이다. 대일견제에 집중을 하다보니 중국으로선 한일 연대를 견제할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한국을 당기고 최대한 우호적으로 지내려고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미국 정부가 바뀐다고 가정해보자. 다시 미중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으로 변한다면 중국은 대미 견제에 집중하며 일본과의 관계 복원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면 한국에 우호적인 현 중국의 기조도 변할 수 있다. 중국이 한국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는 시간은 미국 대선까지 약 2년이라고 본다. 그 사이 한중 관계도 강화해야 한다.
-우리 외교안보라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최근 외교안보라인이 많이 약화됐다고 느낀다. 국제정세는 빠르게 바뀌고 변화의 폭이 크지만 우리의 역량은 이걸 소화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국내 정치적으로 중요한 분들도 많겠지만 변화하는 정세를 읽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외교안보라인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김흥규 국립외교원장 인터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