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2일 오전 국회에서 202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본회의장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국민의힘 의원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예산정국 기싸움 예고…대통령을 대하는 엇갈린 여야
예산정국은 대통령 시정연설 이후 본격화한다. 우선 기획재정위, 정무위, 외통위, 교육위 등 17개 상임위가 소관부처 예산안을 살펴본다. 이후 부처 이기주의 방지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 예결특위에서 전체적인 점검에 나선다. 여야 이견이 지속되면 계수조정소위, 거기서도 타결이 되지 못하면 공식 회의록조차 없는 ‘소소위’에서 사실상 합의가 이뤄진다. 소소위는 예결특위 위원장, 여야 간사, 기재부 2차관과 예산실장 등 극소수만 참여하는 비공식 협의체다. 예산안은 이후 예결위 전체회의를 거쳐 본회의 통과로 마무리된다.
다만 대통령 시정연설 이후 화제는 예산안이 아닌 극히 부수적인 내용들이다. 여야의 엇갈리는 태도는 늘 논란이다. 집권 여당은 보통 박수와 환호로 대통령을 맞는다. 민주당은 이날 대통령 시정연설에 30차례 박수를 보냈다. 제1야당의 대응은 고성과 야유였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사법부 겁박 중단! 재판 독립 수호!/ 1400조 나라 빚+162조 미래빚더미기금’이라는 손팻말을 노트북에 부착했다. 특히 일부 의원들은 연설 도중 야유를 보내거나 퇴장했다.
역대 시정연설 사례를 보면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다를 바 없다. 지독한 내로남불이다. 2000년대 이후 노무현 → 이명박·박근혜 → 문재인 → 윤석열 → 이재명정부로 정권교체가 수시로 이뤄졌지만 늘 그대로다. 크게 다를 바 없는 시정연설인데 유치하게 ‘대통령이 우리 편이냐 아니냐’에 따라 180도 달라진다. 이 대통령의 이날 시정연설에서도 비슷한 광경은 수차례 목격됐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27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을 마치고 나서며 의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시정연설의 신스틸러는 본회의장 풍경이다. 대통령 시정연설은 국회 개원식, 정기국회 개회식과 더불어 여야 의원의 본회의 참석률이 가장 높다. 거의 100%다. 본회의장이 텅텅 빈 대정부질문이나 필리버스터 현장과 사뭇 다르다. 대통령 시정연설 뉴스는 신문, 방송, 종편은 물론 유튜브를 통해 끝없이 확대 재생산된다. 시정연설을 바라보는 여야 속내는 다르다. 민주당은 차기 총선용 사진 확보가 목적이다. 이 대통령 입장과 퇴장시에 악수를 위해 늘어선 긴 줄을 보면 알 수 있다.
반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스타 탄생’의 시간이다. 장동혁 대표, 이진숙·김태규·주진우 의원처럼 지지층을 확보할 절호의 기회다. 특히 본회의장 고성과 항의 장면은 정치 품격과 예의에 어긋나도 ‘강성 팬덤 지지’라는 실리를 챙길 수 있다. 마치 여야 실세의 ‘쪽지예산’ 논란과 유사하다. 언론의 융단폭격 비판에도 지역구 유권자들은 “욕먹어 가면서 수백억 예산을 확보했다”고 찬사를 보낸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식에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조국·윤미향 사면 반대’ 현수막을 펼친 것도 비슷한 논리다.
올해 시정연설 본회의장 풍경도 예상대로였다. 민주당의 박수세례와 달리 국민의힘은 고성과 야유를 쏟아냈다. 이 대통령이 잠시 연설을 멈추자 김미애 의원은 “재판을 재개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시정연설 종료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의 공식은 악수 대기와 셀카였다. 반면 국민의힘 의원 대부분은 악수 거부와 더불어 곧바로 퇴장했다. 유일하게 악수를 나눈 국민의힘 인사는 차기 총선 민주당 입당설이 도는 조경태 의원뿐이었다.
이번만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의 시정연설도 비슷했다. 야당의 항의는 전매특허다. 로텐더홀 피켓시위, 본회의장 고성·야유, 기립·박수 거부, 정장·근조 리본 착용, 손팻말 시위 등 모든 수단이 총동원됐다. 문재인정부 시절 김태흠 전 충남지사는 “사과하세요. 이게 나라냐”고 거칠게 항의했다. 박근혜정부 시절 민주당 의원들은 “나와라 최순실”이라는 손팻말 항의시위도 벌였다. 윤석열정부 시절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이제 그만두셔야죠”, 강성희 진보당 의원은 “줄일 건 R&D가 아니라 대통령 임기”라고 직설적으로 항의하기도 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439회 국회(정기회) 제11차 본회의가 열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7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 후 본회의장을 나서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는 가운데 조경태 의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부는 회계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하여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 헌법 제54조 제2항 규정이다.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은 12월 2일이다. 적어도 회계연도 30일 전에는 예산안이 처리돼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새해 첫날부터 예산안을 집행할 수 있는 행정상 준비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산안 처리는 일반 의결 정족수다. 개헌·탄핵처럼 재적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게 아니다. 국회 재적의원 300명 중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통과된다.
민주당 의석이 161석이라는 점에서 단독 처리도 가능하다. 여의도 정치의 본질은 수적 우위, 거칠게 말하면 ‘쪽수’ 싸움이다. 윤석열정부 시절 민주당이 정부 원안에서 전액 삭감됐던 지역화폐 예산을 살려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마음대로 강행 처리할 수는 없다. 예산안 처리는 쟁점 법안과 달리 여야의 합의 처리가 오랜 관행이다. 수적 열세인 국민의힘이 비빌 언덕이다. 물론 이조차 여론의 지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다만 ‘야당의 독무대’로 볼 수 있는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이 보여준 전략적 미스와 판단 착오를 고려하면 효과적 견제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시정연설이 예산안에 대한 협치 요청이라면 예산안 통과는 협치에 대한 화답이다. 협치의 본질은 ‘기브앤테이크(Give & Take)’다. 야합처럼 보여도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다만 오늘 본회의장 풍경에서 나타난 여야의 태도는 ‘올오어낫씽(All or Nothing)’이다. 민주당은 ‘절대 과반’이라는 수적 우위에 자신만만이다. 국민의힘은 ‘무조건 안된다’는 발목잡기다. 여야 모두 강성 지지층에 기댄 극단화된 정치 지형의 영향이다. 결과적으로 대통령 시정연설이 상징하는 협치는 시작과 동시에 종말을 맞은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