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의 시대, 정부가 할 일과 시장에 맡길 일[특별기고]

정치

이데일리,

2026년 November 05일, AM 05:01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추가 세수를 청년과 미래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성장의 토대를 넓히겠다는 방향은 타당하다. 다만 정부의 역할이 커질수록 지출 원칙도 분명해야 한다. 통화정책과의 역할 분담과 재정의 지속가능성도 중요하다.

신관호 전 한국금융학회 회장(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사진=이데일리DB)
신관호 전 한국금융학회 회장(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사진=이데일리DB)
글로벌 금융위기는 통화정책만으로 소비와 투자를 되살리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줬다. 코로나19 때는 가계와 기업을 재정으로 직접 지원해야 했다. 두 차례 위기를 넘기며 정부부채는 크게 늘었다. 문제는 재정여력이 줄어든 바로 그때 정부가 나서야 할 일은 오히려 늘고 있다는 점이다. 공급망 재편과 미·중 갈등으로 연구개발과 전력망 건설, 핵심 인력 양성에서 정부의 역할은 커졌다.

정책조합은 더 정교해야 한다. 평상시 수요를 조절해 물가와 경기를 안정시키는 데는 통화정책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반면 재정정책은 대규모 충격과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고, 필요한 계층을 직접 지원할 수 있다. 시장에 맡기면 투자가 부족해지는 분야를 보완해 공급능력과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것도 재정의 역할이다.

그러나 시장이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부가 더 잘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가 특정 기업이나 기술을 선택하면 정보 부족과 정치적 개입, 보조금 확보 경쟁으로 자원배분이 왜곡될 수 있다. 특히 AI처럼 기술 변화가 빠른 분야에서는 정부가 기업과 투자자보다 유망한 기술을 더 정확히 가려내기 어렵다. 정부는 미래의 승자를 직접 고르기보다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할 토대를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정부부채 증가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충돌도 키울 수 있다.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으려 금리를 올리면 정부의 이자 부담도 커진다. 그만큼 긴축을 늦추거나 되돌리라는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재정 부담이 중앙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를 제약하는 ‘재정우위’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국채 발행 확대가 장기금리를 밀어 올려 민간투자를 위축시키면 재정지출의 성장효과도 약해질 수 있다.

정책조합의 핵심은 각 정책이 잘할 수 있는 일을 맡기는 것이다. 통화정책은 물가와 경기를 안정시키고, 재정정책은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보완하며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공급능력을 높여야 한다. 미래대응기금 등 예산의 명칭이나 규모만으로 성장잠재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개별 사업이 생산성과 민간투자를 촉진하는지, 재원 대책 없이 의무지출을 늘리지는 않는지 따져야 한다. 재정정책이 중요해진 만큼 지출의 우선순위는 더 분명해야 하고, 성과도 더 엄격하게 검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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