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컴퓨터 하나까지…'태풍상사' 1997년 비주얼, 이렇게 탄생했다

연예

iMBC연예,

2025년 11월 07일, 오전 08:11

'태풍상사' 김민혜 미술 감독이 작품의 디테일을 설명했다.

iMBC 연예뉴스 사진

tvN 토일드라마 ‘태풍상사’(연출 이나정·김동휘, 극본 장현, 기획 스튜디오드래곤, 제작 이매지너스·스튜디오 PIC·트리스튜디오)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속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세밀한 미술로 복원해내며 열띤 반응을 얻고 있다. 이에 ‘태풍상사’의 디테일한 제작기와 그 시대를 되살린 공간의 미학을 들어봤다.

[이하 김민혜 미술 감독의 일문일답.]

Q.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구현하기 어떤 점에 주목했고, 또 어떤 노력들을 했나.

“그 시대의 감성이 아닌, 그 시대의 정신을 담고 싶었다”는 장현 작가의 기획의도에 주목했다. 단순한 복고가 아닌 당시 사람들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표현하고자 했다. 당시 직장인들은 ‘회사가 곧 가족’이라는 조직문화 속에서 살았고, 젊은 세대는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중시했다. IMF 외환위기는 이 두 세대가 결국 하나로 엮이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IMF 전 강태풍(이준호)의 공간은 자유롭고 화려하게, 오미선(김민하)의 공간은 현실의 무게를 담아 채도를 낮게, 그리고 단조롭게 했다.

1997년이라는 명확한 연도와 사회상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다큐, 각 방송사 뉴스 영상, 신문, 잡지, 언론사 사진, 각 지역 아카이브 사이트 사진 및 영상들을 정말 많이 찾아봤다. 미술팀 전원이 날을 잡고 도서관에서 종일 책만 읽다 온 적도 있었다. 이를 토대로 디테일을 쌓았다. 간판의 경우, 같은 폰트라도 90년대 글씨체는 자간과 뻗침이 미묘하게 달라서, 그런 작은 차이들이 모여 진짜 같은 시대감을 만든다고 생각해 신경을 많이 썼다. 또 을지로는 블루, 옐로우 톤이 많았고, 압구정은 핫핑크, 보라색, 흰 바탕에 영어 간판이 주를 이뤘다는 점, 당시 인쇄 업체가 빨강, 노랑, 파랑 세 가지 색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는 점을 착안해 그래픽디자인에 그 색감을 반영했다. 세트는 90년대 나온 한국건축 서적과 건축과가 있는 대학 도서관 자료를 참고해 완성했다.

Q. 요즘 세대에게 을지로는 뉴트로의 성지이자 ‘힙지로’라고 불리는 공간인데 ‘태풍상사’ 속 을지로의 풍경이 어떻게 전해지길 바랐나.

당시의 을지로는 수많은 회사원들이 출퇴근하던 공간이었다. 을지로3가역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회사원들, 한일은행 앞에서 버스가 세워지면 토해지듯 내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들이 흩어져 들어가던 골목마다 중소기업, 양장점, 인쇄소, 다방과 식당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래서 IMF 전의 을지로 이미지를 찾아보면 정장을 입고 신문을 하나씩 든 사람들이 거리를 거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IMF가 터지고 폐업과 휴업이 많아지며 점점 텅 비고 쓸쓸한 거리가 되었지만, 그 안에는 우리 부모 세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치열했던 삶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Q. 태풍상사 사무실은 어떤 컨셉으로 구상됐나. 소품을 구하는 과정의 에피소드도 궁금하다.

70년대 초 강진영(성동일)이 꽤 좋은 대기업을 다니다, 1972년 태풍상사를 차리게 됐다는 전사가 있었다. 그는 세련된 감각과 미적 안목을 지녔고, 100년 넘게 이어갈 회사를 꿈꾸며 공간부터 다르게 설계했다. 직원들이 가족처럼 따뜻하게 일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창이 큰 개방형 사무실을 만들었고, 모두가 한 공간 안에서 소통할 수 있도록 사장실 문과 벽에 유리창을 넣어 서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그러면서도 수입가구, 문구와 장식을 넣은 바닥, 세트팀이 직접 조립한 사무실 천장, 강진영이 해외 출장 갔다가 사왔다는 설정의 미국식 천장 조명, 6~70년대 미국 사무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둥근 대형 기둥벽 등으로 그의 미적 감각을 보여줬다. 또한 세트 내부 전체를 감싸는 녹색빛 석재를 구하기 위해 미술팀과 세트팀이 정말 많은 석재집을 발로 뛰며 찾아냈다.

사무실이 7-80년대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설정이 72년에 지어진 사무실이기 때문이다. 강진영은 새로운 물건을 들이는 성격이 아니고, 직원들도 수기로 작성하는 것을 좋아해, X세대 배송중(이상진)이나 젊은 직원들만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설정으로 소품을 세팅했다. 소품을 확보하는 과정도 정말 쉽지 않았다. 컴퓨터는 대부분 경매 사이트를 통해 구입했는데, 새벽 5시에도 계속 새로고침하며 금액을 올려야 살 수 있었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텔렉스는 대전의 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네 차례나 찾아가 설득한 끝에 대여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90년대 소품들은 중고로 수소문하거나 경매 사이트에서 구입 또는 외국에서 수입해서 어렵게 모았다.

Q. 태국 촬영 장면은 어떤 질감과 톤으로 접근했나.

태국의 정보는 한국처럼 많이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이미지 등을 참고해 접근했다. 태국 스태프들에게도 자문을 많이 구했는데, 실제 로케이션 촬영지들도 1997년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더라. 그래서 기본 구조는 그대로 활용했다. 다만 노출되면 안 되는 부분은 덧방 처리하고, 필요한 소품을 채워 넣으며 세밀하게 조정했다. 태국에서는 현지 스태프들의 도움으로 자연스러운 생활감과 색감을 살리는 데 집중했고, 오히려 한국에서 촬영한 태국 분량 세트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람차야 항구 세트에는 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라, 핑크, 연두색 계열의 대형 현수막을 설치해 현지 분위기를 구현했고, 사진관, 임시사무실, 게스트하우스 세트를 만들 때는 태국 건축의 색감, 질감, 특성을 세밀하게 반영했다. 예를 들어 태국 건물마다 볼 수 있는 바람 구멍(Ventilation block), 곳곳에 놓인 식물과 작은 기도 공간, 그리고 타일을 많이 사용하는 인테리어 질감 등을 활용해 디자인했다.

Q. 반환점을 돈 ‘태풍상사’의 2막에서 어떤 미술적 변화나 관전 포인트가 있을지.

이전 회차와 마찬가지로 16부까지 쭉 태풍이는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찾고, 또 도전한다. 저희 미술팀도 태풍이랑 같이 돌아다니고, 찾고, 도전할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열심히 했으니, 그 많은 공간들을 잘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결국 무역회사이기 때문에 이후로도 다양한 제품들이 많이 나온다. 하나하나 다 미술 소품팀이 구하고 만들어낸 제품들이니 재밌게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iMBC연예 백승훈 | 사진출처 tvN

※ 이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바, 무단 전재 복제, 배포 등을 금합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