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미쳤다'고 한 24인조 걸그룹, 전 확신 있었죠"[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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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5년 11월 20일, 오전 06:01

[이데일리 스타in 김현식 기자] K팝 업계에서 정병기 모드하우스 대표의 프로듀서 활동명 ‘제이든 정’(Jaden Jeong)이 지니는 의미는 남다르면서도 묵직하다. ‘덕질’(팬 활동) 좀 해봤다 하는 K팝 팬들에게 ‘제이든 정’이라는 이름은 음악과 콘텐츠에 대한 높은 완성도를 기대하게 만드는 ‘보증 수표’로 통한다. 정 대표에 대한 아티스트들의 신뢰도 또한 높다. 싱어송라이터 헤이즈는 “아티스트의 꿈을 보란 듯이 현실로 데려와 주는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찬사를 보냈고, 밴드 넬의 김종완은 “내가 아는 사람 중 뮤지션과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사람 중 한 명”이라고 그를 치켜세웠다.

정병기 모드하우스 대표(사진=모드하우스)
그런 그가 최근 첫 저서 ‘기획의 감각’을 펴냈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음악과 콘셉트로 K팝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정 대표는 자신의 행보와 찰떡처럼 맞아떨어지는 제목의 책에 그간 쌓은 기획 노하우를 세심하게 풀어냈다. 책 발간 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모드하우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한 정 대표는 “저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어느덧 K팝계에서 20년 넘게 활동한 만큼, 제가 걸어온 길과 생각을 한번쯤 정리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고 집필 계기를 밝혔다.

◇히트 작곡가 곁에서 프로듀싱 감각 키워

정 대표는 모드하우스 설립 전 JYP엔터테인먼트, 울림엔터테인먼트,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 소니뮤직 등 여러 가요 기획사와 음반사에서 A&R(Artists & Repertoire)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한 베테랑 프로듀서다. 그간 원더걸스, 2PM, 인피니트, 러블리즈, 이달의 소녀 등 여러 아이돌 그룹의 기획과 앨범 제작에 참여했고, 2021년 설립한 모드하우스를 통해서는 걸그룹 트리플에스·아르테미스, 보이그룹 아이덴티티 등을 론칭했다.

정 대표는 “지금은 대표 직함을 달고 있지만, 제 정체성은 제작자가 아닌 A&R이라고 생각한다”며 “A&R 담당을 오래 맡아온 사람으로서, ‘기획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뭘까’ 생각해 본 끝에 ‘감각’이라는 키워드를 책 제목에 붙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감각이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않다. 저 또한 그렇지 않은 99.9%의 사람 중 한 명”이라며 “책을 통해 노력으로 감각을 키우는 법, 그리고 그 감각을 기반으로 한 기획을 실행으로 옮기는 법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걸그룹 트리플에스(사진=모드하우스)
걸그룹 트리플에스(사진=모드하우스)
10대 때부터 음악 분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었던 정 대표는 18세 때 아이돌 밴드를 직접 제작했다가 실패의 쓴 맛을 본 독특한 경력이 있다. 그즈음 일면식도 없던 스타 만화가 천계영을 무작정 찾아가 그의 히트작 ‘언플러그드 보이’의 열혈팬임을 자처하며 인연을 맺은 뒤 음악 소재 후속작 ‘오디션’ 기획 작업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정 대표는 “당시 (천)계영 누나가 어린애였던 저의 이야기를 흔쾌히 귀 기울여 들어주셨다. ‘오디션’ 만화책의 ‘땡스 투’ 섹션을 자세히 보시면 제 이름이 있다”며 웃었다. 이어 그는 “관심사에 대한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기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 저를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들어줬다”고 덧붙였다.

책에는 정 대표가 PC통신에 올린 음악 리뷰글을 매개로 친분을 쌓은 ‘히트곡 메이커’ 박근태 프로듀서의 A&R 담당자로 업계에 입문한 뒤 여러 앨범 작업에 참여하며 겪은 경험담이 다채롭게 담겼다. 정 대표는 “박근태 프로듀서님 곁에서 일한 덕분에 일찌감치 기라성 같은 가수들의 음반 프로모션 과정에 관여하며 폭넓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이어 “박근태 프로듀서님이 장인정신을 가지고 곡을 쓰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경험은 ‘좋은 기획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한층 더 굳히는 계기도 됐다”고 말을 보탰다.

◇‘이달소 프로젝트’로 스타 프로듀서 발돋움

정 대표는 ‘탈 아이돌급’ 음악성으로 호평받은 인피니트와 러블리즈의 앨범 작업에 참여한 프로듀서로 주목받으면서 K팝계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뒤이어 ‘매달 우리는 한 명의 소녀를 만난다’는 슬로건 아래 1년 5개월에 걸쳐 멤버 12명의 솔로곡을 차례로 공개하는 파격 프로젝트로 화제를 모은 이달의 소녀를 성공적으로 론칭시키며 스타 기획자로 발돋움했다.

정병기 모드하우스 대표(사진=모드하우스)
모드하우스 설립 이후에는 ‘24인조 초대형 걸그룹’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숱한 화제를 뿌린 트리플에스를 성공 궤도에 올리며 주가를 더욱 높였다. 정 대표가 제작한 트리플에스는 지난 5월 발매한 ‘완전체’ 앨범 ‘어셈블 25’(ASSEMBLE 25)로 35만 장(써클차트 상반기 앨범차트 기준)이 넘는 음반 판매고를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중소돌’의 단일 앨범 음반 판매량의 경우 10만 장만 넘겨도 ‘성공’으로 평가 받는다. 그렇기에 업계에선 트리플에스를 두고 ‘중소 기획사의 기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정 대표는 “24인조 걸그룹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을 때 ‘미쳤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기존 기획사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아 결국 직접 모드하우스를 설립하게 되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남들은 ‘절대 안 된다’고 입을 모았지만, 전 제가 짠 기획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면서 “흔들리지 않고 밀어붙인 끝에 좋은 성과를 거둬 뿌듯하다”고 말했다.

트리플에스는 자체 앱 ‘코스모’(COSMO)을 통해 진행하는 팬 투표 결과를 앨범 콘셉트, 디멘션(유닛) 조합, 타이틀곡 선정 등에 반영하는 팬 참여형 운영 방식으로 견고한 팬덤을 구축했다. 이에 더해 NFT(대체불가토큰) 기술을 활용한 개별 포토카드인 ‘오브젝트’ 수익을 멤버들의 정산과 연결하는 시스템을 적용해 팬 참여도를 더욱 활발하게 만들었다.

정 대표는 “제작 손익분기점을 넘기 전 아티스트에게 일정 부분 정산이 이뤄지고,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팬들의 활동이 아티스트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했다. 이어 그는 “첫발을 잘 뗀 것 같아 기쁘다”며 “앞으로 아티스트와 팬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구조를 더욱 탄탄하게 다져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걸그룹 아르테미스(사진=모드하우스)
보이그룹 아이덴티티 디멘션 유네버멧(사진=모드하우스)
◇“모드하우스 영향력 더 키울 것” 포부

‘남들이 미쳤다고 말할 때 기획은 완성된다’. 정 대표가 저서 ‘기획의 감각’ 표지에 내세운 홍보 문구다. 그는 마치 자신이 내뱉은 말을 몸소 증명하려는 듯, 모드하우스를 통한 번뜩이는 기획과 실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소속 아티스트 중 트리플에스는 4개의 디멘션이 한꺼번에 신곡으로 활동하는 형태인 ‘트리플에스 미소녀즈’의 첫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고, 아이덴티티는 ‘24인조 데뷔’를 목표로 잡고 활동 멤버 수를 점차 늘려가고 있다. 이달의 소녀 출신 멤버들로 이뤄진 아르테미스는 각 멤버의 솔로곡 프로젝트로 글로벌 팬들과 만나는 중이다.

정 대표는 “다인원 그룹을 동시다발적으로 활동시키는 노하우는 모드하우스가 대한민국 가요 기획사를 통틀어 가장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웃어 보인 뒤 “저의 강점이자 무기인 스토리텔링과 서사 구축 능력을 모두 쏟아부어 소속 아티스트들이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활동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전 K팝 시장이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낙관론자 중 한 명이에요. 모드하우스가 훨씬 더 커질 K팝 시장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회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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