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러닝 맨' 스틸 컷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더 러닝 맨'은 1982년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이름으로 발간한 소설 '러닝 맨'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1987년에 당대 액션 스타 아널드 슈워제네거를 주인공으로 첫 번째 영화가 나왔고, 이번 작품은 38년 만에 다시 나온 새 영화다. 연출석에 앉은 이는 2017년 '베이비 드라이버'로 스타일리시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에드거 라이트 감독이다. 전작 '라스트 나잇 인 소호'(2021)로 엇갈린 평을 얻었던 그는 이번에는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있는 추격 액션 영화로 연말 극장가 공략한다.
20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더 러닝 맨'은 133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서스펜스 넘치는 재미가 있는 오락 영화였다. 무려 43년 전 스티븐 킹이 예상했던 근미래 디스토피아는 2025년을 살아가는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낼 만큼 놀라운 동시대성으로 보는 재미뿐 아니라 나름의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영화는 '네트워크'라는 거대 기업이 정부 노릇을 하는 근미래 미국에서, 아픈 딸의 약값조차 없는 벤 리처즈(글렌 파월 분의 난처한 상황을 그리며 시작한다. 그는 전 회사에서 정의로운 폭로자였지만, 그로 인해 블랙리스트에 올라 해고를 당하게 됐고, 아내는 가족을 위해 업소에 나가 가족을 부양하게 됐다.
'더 러닝 맨' 스틸 컷
네트워크는 빡빡한 감시 시스템과 온갖 종류의 TV쇼로 대중을 통제하고 우민화해 절대 권력을 유지한다. 빈부격차로 인해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하층민들은 네트워크가 만든 각종 게임쇼를 지켜보며 우승 상금만이 가난을 벗어날 유일한 길이라 믿는다. 벤 리처즈 역시 실직으로 무력해진 상황에서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네트워크에 들어가 TV쇼 출연 오디션을 본다.
네트워크의 게임쇼 중 가장 인기가 많고 위험한 쇼는 '더 러닝 맨'이다. 범죄자들로 구성된 '러닝 맨'들이 '헌터'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30일 이상 죽지 않고 살아남는 데 성공하면 큰 상금을 얻게 되는 형식이다. 조작 방송의 영향으로 혐오와 불신이 가득한 시대에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더 러닝 맨'은 현대판 검투 경기이며, 방송 화면은 도파민에 푹 빠져 폭력과 자극을 찾는 데 혈안인 빈곤층만의 '콜로세움'이다.
벤은 아내에게 절대 '더 러닝 맨'에는 나가지 않겠다 약속하지만, '더 러닝 맨'의 제작자 댄 킬리언(조쉬 브롤린 분)은 그를 이 TV쇼의 새로운 스타로 점찍는다. 부정한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는 데다, 오랜 현장 경험 덕에 탁월한 신체적 조건과 위기 대처 능력을 지닌 그는 시청자들을 흥분하게 할만한 스타의 자질을 갖춘 인물이기 때문이다. 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장면들이 나올수록 시청률은 하늘을 찌를 것이다. 다른 두 명의 참가자와 함께 '러닝 맨'이 된 벤 리처즈는 대중의 관심과 여기저기 덫처럼 설치돼 있는 감시 카메라, 첨단 기술로 무장한 헌터들을 피해 생존해야 한다.
'더 러닝 맨' 스틸 컷
'더 러닝 맨' 스틸 컷
영화는 톰 크루즈(?)가 된듯 몸 사리지 않고 스턴트 액션을 펼치는 글렌 파월의 도주 과정을 흥미롭게 담는다. '베이비 드라이버'의 감독답게 에드거 라이트 감독은 '퓨처 레트로' 스타일의 미술과 음악으로 원작 소설이 쓰인 80년대의 감성과 디스토피아적인 근미래 SF의 매력을 조화롭게 블렌딩했다.
'탑건: 매버릭'에서 행맨 역으로 사랑받은 글렌 파월은 영화의 주인공 벤 리처즈 캐릭터로 흡인력 있는 활약을 보여준다. 영웅심보다는 불의에 대한 분노와 반항심으로 부조리한 상황을 전복시켜 가는 벤 리처즈의 모습은 공감할 만하다.
'더 러닝 맨'의 서사가 다소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미디어와 기술, 자본에 의한 감시와 통제라는 테마가 무척 고전적이기 때문이다. 일견 여러 작품에서 반복된 플롯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것은 미디어의 강력한 영향력과 정보격차, 기술에 의한 현실 왜곡과 조작 등의 현대적인 화두를 꽤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온다. 40여년 전 발휘된 한 작가의 통찰력과 이를 스타일리시하게 재해석한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연출 감각이 돋보인다. 오는 12월 3일 개봉.
eujenej@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