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 사람들' 39금 소재로 그린 관계의 통찰...깊고 예리해진 하정우 코미디[봤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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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5년 11월 25일, 오후 07:28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노출신 없이 순도 100% 구강 액션으로 완성한 ‘섹’다른 파격 코미디. 39금 드립의 거침없는 향연에도, 관계의 민낯을 섬세히 포착한 감독 하정우의 예리한 시선이 돋보인 영화 ‘윗집 사람들’이다.

‘윗집 사람들’은 매일 밤 섹다른 층간소음으로 인해 윗집 부부와 아랫집 부부가 함께 하룻밤 식사를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롤러코스터’, ‘허삼관’, ‘로비’에 이어 하정우가 감독으로 메가폰을 잡은 네 번째 연출작이다. 스페인 원작을 하정우 감독이 특유의 말맛 대사와 재치를 입혀 각색했다.

‘윗집 사람들’은 공개적 대화 소재로 이야기를 꺼내기엔 아직까진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더 짙은 부부 간 ‘성’(性) 생활 문제를 노골적으로 수면 위로 꺼낸다. 영화는 결혼 생활의 권태와 소통의 단절로 각방 동거를 한지 오래인 아랫집의 섹스 리스 부부 정아(공효진 분), 현수(김동욱 분)의 생활로 포문을 연다. 한 집에 같이 살지만 메신저로 서로의 생존 확인을 할 만큼 소원한 정아, 현수 부부는 매일 밤 격정을 달리는 윗집 부부 김선생(하정우 분)과 수경(이하늬 분)의 노골적인 소음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정아는 매번 소음에 괴로워하면서도, 무미건조한 자신들과는 다른 윗집 부부의 생활에 개인적 호기심과 관심을 느낀다. 현수는 수면 장애에 시달릴 정도로 윗집 부부가 내는 소음에 이골이 난 상태로 당장이라도 신고할 기세이지만, 정아가 이를 극구 말리는 상황. 그것은 정아-현수 부부가 지금 집으로 이사하며 인테리어 공사로 시끄러운 소음을 낼 당시 윗집 부부는 한 번도 싫은 소릴 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사 후 6개월간 집에서 식사 대접하겠다 말만 하고 약속을 지킨 적이 없던 정아는, 마음을 먹고 날을 잡아 윗집 부부를 집으로 초대한다. 윗집 이웃을 집으로 초대하겠다던 정아의 말을 흘려 들었던 현수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당장이라도 취소하라 분개하지만, 이미 윗집 부부는 집 문 앞에 도착해버렸다. 한 시간까지만 참겠다, 이후에도 윗집 사람들을 집에 내보내지 않는다면 층간 소음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를 전부 쏟아내겠다는 현수의 으름장과 함께 네 사람의 아슬아슬한 식사가 시작된다.

러닝타임 107분의 처음부터 끝까지, 장면의 거의 90%가 정아와 현수의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구성된 연극적 전개와 연출이 눈에 띈다. 공간이 한정된 것은 물론,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도 정아와 현수, 김선생, 수경 네 사람 뿐인 만큼 대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다. 연출 입장에서도, 캐스팅된 배우들의 입장에서도 쉽지 않을 도전이다.

이미 감독 데뷔작인 ‘롤러코스터’(2013)로 한정된 공간 속 앙상블이 빛나는 작품을 경험한 하정우는 공간의 한계를 오히려 ‘대사의 말맛’, 배우들의 매력을 극대화할 효과적인 무대 장치로 영리하게 활용했다. ‘롤러코스터’ 땐 다듬어지지 않아 아쉬웠던 요소들이, 전작들을 경험하며 쌓인 노하우와 경험치를 거쳐 ‘윗집 사람들’로 진화를 이룬 모습이다.

영화엔 손목 노출신 하나 등장하지 않지만, 시나리오 속 윗집 부부가 제안하는 상황, 그 상황에 대처하는 아랫집 부부의 대처와 단어 선택들이 상당히 노골적이고 수위가 높다. 초면인 부부들이 자신들의 ‘성’에 관한 이야기를 바닥까지 털어놓는 상황이 워낙 비현실적이라 판타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소통이 단절된 정아, 현수 부부가 서로가 외면해온 관계의 민낯을 마주하고 갈등을 폭발시키는 과정이 극강의 과몰입을 선사한다. 갈등의 발단이 된 상황은 비현실적이지만, 이를 통해 부부나 커플이 서로 오랜 시간 함께하며 겪을 법한 갈등을 매우 현실적으로 날카롭게 포착했다. 대사의 비중이 높은 영화의 특성을 고려해 영화에 전체 한글 자막을 입힌 하정우의 연출적 판단도 적절했다.

자칫 발칙함이 저급함으로 변색될 수도 있는 극단적 대사와 상황을 익살스러운 말장난, 음악의 적절한 배치로 텐션을 높여 중화시킨 연출도 영리했다.

모든 속박을 내려놓되, 현실감과 설득력은 잃지 않은 네 배우의 무장해제 열연과 연기 변신이 이 영화의 엑기스이자 생명력이 됐다. 문어체 대사에 감정과 생활감을 불어넣은 공효진과 김동욱의 현실 부부 열연은 극의 든든한 중심으로 기능한다. 현란한 대사로 서로에게 날카로운 말을 쏟아 부으면서도, 눈빛 등 비언어적 제스처로 서로의 상처와 숨겨둔 진심을 한겹한겹 벗겨 꺼낸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가 인상적이다.

그와 정반대인 윗집 부부 김선생과 수경의 농익은 익살 케미스트리가 하정우표 코미디 텐션을 지킨다. 자칫 심각해져 ‘이혼숙려캠프’ 느낌으로 빠져버릴 순간 김선생의 행보는 어이없는 웃음을 자아내고, 심각한 상황에도 천연덕스럽게 아무말을 던지는 김선생의 텐션을 지그시 제압하는 이하늬의 우아하면서도 냉철한 열연이 적절히 분위기를 맞춘다.

부부의 39금 생활을 소재로 꺼냈지만, 결국 인간관계의 본질과 민낯을 건드린 작품이기에 굳이 결혼한 기혼자가 아니라도 충분히 몰입하며 볼 수 있다. 대사의 수위와 말맛 대사의 호불호가 진입장벽이 될 수는 있다. 생각할 거리를 안기면서도 코미디의 명랑함은 잃지 않는 재기발랄한 영화다.

‘윗집 사람들’은 오는 12월 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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