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SEN=장우영 기자] 사랑스럽고 통통 튀는 매력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국민 여동생'이 서늘한 가면을 썼다. 그리고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친애하는 X’(극본 최자원 반지운, 연출 이응복 박소현)를 통해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선보인 배우 김유정의 이야기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유정은 아직 백아진의 잔상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듯하면서도, 배우로서 한 뼘 더 성장한 단단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 "악역이 주인공, 걱정됐지만..." 10년 만에 깨부순 틀
김유정에게 '친애하는 X'는 단순한 차기작 그 이상의 의미였다. '우아한 거짓말' 이후 약 10년 만에 선보이는 악역이자, 철저하게 악을 품은 인물이 극을 끌고 가는 원톱 주연작이었기 때문. 김유정은 "티저가 공개됐을 때 반응이 좋을지 예상을 못 했다. 걱정도 되면서 기대감도 있었는데, 공개 후 좋은 글도 많이 써주시고 원작 팬분들도 '백아진 그 자체'라고 해주셔서 안심이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유정이 연기한 백아진은 살아남기 위해 가면을 쓴 소시오패스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톱배우다. 아름다운 얼굴 뒤에 잔혹한 본성을 숨긴 채 주변 인물들을 철저히 이용하고 파멸로 이끈다. 그는 작품 선택의 이유에 대해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인물의 성향이라 많이 끌렸다.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최대치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흥미로웠다. 하지만 악을 가진 캐릭터가 주인공이 됐을 때 시청자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그 아슬아슬한 선을 표현하기 위해 감독님과 정말 많이 상의했다"고 말했다.

▲ 응원받지 않기를 바랐던 악녀, 백아진을 완성한 디테일
김유정은 백아진을 연기하며 '카타르시스'와 '스트레스'를 동시에 느꼈다고 털어놨다. 아버지와의 대립이나 자신을 괴롭히던 인물에게 반격할 때는 연기적 쾌감을 느꼈지만,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을 경험하고 표현해야 하는 과정은 인간 김유정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였다.
그럼에도 그는 철저한 분석으로 백아진을 구축해 나갔다. 특히 '가스라이팅' 언어 리스트를 참고했다는 대목은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이 캐릭터에 매달렸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자문을 구해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분들이 자주 쓰는 언어 리스트를 받았다. 처음엔 두 줄 읽고 '안 되겠다' 싶더라. 저조차 백아진에게 현혹당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촬영하면서 사전처럼 찾아보며 상대를 조종하려는 심리를 연구했고,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김유정이 백아진을 연기하면서도 "캐릭터가 응원받지 않았으면 했다"고 밝힌 부분이다. 김유정은 "이 아이를 응원할 수 있는가, 돌을 던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계속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백아진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격적으로 성장할 때 중요한 요인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방향으로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김유정이 단순히 배역을 소화하는 것을 넘어 작품의 메시지를 관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점이었다.

▲ 김영대·김도훈·황인엽... '아진의 남자들'과 만든 시너지
극 중 백아진의 곁을 맴도는 세 남자, 윤준서(김영대), 김재오(김도훈), 허인강(황인엽)과 호흡도 빛났다. 김유정은 이들과 촬영 전부터 대본을 공유하며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고, 이는 작품 속 팽팽한 텐션과 대조되는 시너지를 낳았다.
특히 김도훈과의 호흡에 대해 언급하며 "데뷔 후 첫 열애설이었다"고 너스레를 떤 김유정은 "우리끼리는 이 계기로 작품이 잘됐으면 한다고 농담도 했다. 동료 배우들이 저의 팬이라며 존중해 줘서 고마웠고, 백아진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인물이라 현장에서는 일부러 더 친해지려 노력했다"고 전했다.

▲'국민 여동생' 넘어 '믿고 보는 배우'로... 김유정의 증명
어느덧 연기 경력 20년을 훌쩍 넘긴 베테랑 김유정. '해를 품은 달', '구르미 그린 달빛' 등을 통해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국민 여동생'은 이제 어떤 장르, 어떤 캐릭터를 맡겨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되었다. 특히 '친애하는 X'는 티빙 주간 유료가입기여자수 1위, 글로벌 OTT 차트 상위권을 기록하며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이는 김유정의 과감한 변신이 대중에게 통했음을 증명하는 지표다.
"배우 인생을 돌아보면 보람차다. 가족들과 팬들이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 해낼 거야'라고 해주시는 말이 큰 힘이 된다. 저도 혼란스럽고 불안할 때가 있지만,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들을 믿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김유정은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에 한계가 없음을 입증했다. 맑고 순수한 얼굴 이면에 감춰둔 서늘한 독기까지 완벽하게 꺼내 보이면서 이제 '아역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거대하고 깊은 배우의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옳았다. '친애하는 X'의 백아진은 김유정이라는 배우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가 됐다. /elnino8919@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