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고 싶은 건 작품뿐"… 두 눈 시력 잃어가면서도 연기를 놓지 않았던 故 이순재의 마지막 이야기
[OSEN=김수형 기자]'MBC 다큐멘터리 추모특집'에서 대중문화의 한 시대를 만든 거목이자,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연기 장인’인 고 이순재의 깊은 연기 열정이 다시금 조명됐다.
지난 28일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추모특집 ‘배우 이순재, 신세 많이 졌습니다’는 70여 년을 연기와 함께 살아낸 故 이순재의 마지막 여정을 담아내며 전국을 먹먹하게 했다.
다큐에서는 그의 타오르는 연기 인생도 상세히 그려졌다. ‘허준’ 촬영 당시에는 혹독한 해부 장면을 위해 한겨울 동굴 바닥에 18시간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는 후일담이 공개됐다.배우들이 “대선배님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산’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 이서진도 “작품 이야기만 하면 눈빛이 초롱초롱했다”며“역사·문화·철학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작품에 스며들어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연기가 나왔다”고 회상했다.

이서진은 특히 영화 ‘덕구’를 언급하며 “저예산 작품이었는데 노개런티로 출연하셨다”며“배우란 어떤 존재인가를 선생님이 몸소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촬영 현장에서 넘어져 다쳤을 때도故 이순재는 “괜찮아, 이 정도는 괜찮지”라며오히려 스태프를 먼저 안심시켰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드라마 ‘개소리’였다. 나이 90세, 노년의 몸으로 서울과 거제도를 오가는 강행군이었지만그는 힘든 내색 한 번 없이 촬영을 이어갔다고 한다. 주연을 맡아 누구보다 의욕에 차 있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그 안에는 우리가 몰랐던 고통이 있었다”는 슬픈 진실이 공개됐다.왼쪽·오른쪽 눈 모두 100% 보이는 게 아니었다는 것. 소속사 대표 이승희는 “이 이야기를 모르는 분들이 많다”며고인의 눈 상태를 처음으로 밝혔다. 이대표는 “선생님은 왼쪽과 오른쪽 눈 모두 시력이 100%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예전과 똑같이 연기 훈련을 하셨다.‘안 보이니까 더 연습해야 한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대본을 읽기 어려워진 뒤에는 대표와 매니저에게 “크게 읽어달라”고 요청했고, 들으며 외우는 방식으로 연습을 이어갔다는 것. 이대표는 “그 모습을 보는 게 정말 마음이 아팠다"며 울먹였다.

후배 송윤숙도 “보이지 않는 부분을 노력으로 채우셨다. 그게 선생님이 가진 ‘도전’이었다.그래서 늘 ‘잘할 수 있다’고 자신감 있게 말씀하셨다.”며 고인의 깊은 정신과 태도가 얼마나 숭고했는지를 보여줬다.
다큐는 올해 5월 25일, 병상에 누워 있는 故 이순재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공개했다. 소속사 대표가“누워계시면 뭐 하고 싶은 거 없으세요?”라고 묻자, 그는 주저 없이 이렇게 답했다. “하고 싶은 건… 작품뿐이지.”라고 대답한 모습. 이승희 대표는“지금은 회복이 먼저다. 천천히 준비하자”고 달랬지만고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연기를 할 생각에 눈빛을 반짝였다.
그러나 그의 소원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故 이순재는 지난 11월 25일,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나 모두를 슬픔에 잠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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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방송화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