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 장민수 기자) 소설, 영화에 이어 무대로 탄생한 '라이프 오브 파이'. 탄탄한 원작에 더해 생생한 퍼펫과 아름다운 무대, 배우들의 열연까지. 공연으로 즐길 이유가 충분하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맨부커상 수상작인 얀 마텔 작가의 스테디셀러 소설 '파이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다. 2013년 이안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돼 사랑받았다. 로리타 챠크라바티 OBE 작가, 맥스 웹스터 연출 등이 창작진으로 참여했으며, 2021년 웨스트엔드, 2023년 브로드웨이 초연했다. 한국 프로덕션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구명보트에 남겨진 소년 파이와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227일간의 이야기다. 파이는 갖은 기지를 발휘해 생존을 이어가고, 무시무시한 벵골 호랑이마저 길들여 끝내 살아남는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선박 사고 보험을 해결하려 찾아온 조사관에게도,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은 관객에게도. 그리고 파이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내놓는다. 보트 위에 올라탄 건 동물들이 아닌 인간들이며, 서로를 죽이고 뜯어먹으며 살아남았다는 것. 그 잔인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는 믿을 수는 있으나 믿고 싶지 않다.
결국 믿음에 관한 이야기다.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파이는 끊임없이 믿음이 흔들린다. 신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그러나 결국 그를 살게 하는 것 또한 믿음이다. 비록 그것이 환상의 이야기일지라도. 고난으로 가득 찬 삶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으며 나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서사적으로는 원작이나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차이를 만드는 요소는 무대만의 매력이 무엇이냐다. 이번 공연은 '연극'이 아닌 '라이브 온 스테이지'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그런 만큼 무대 위 생동감에 초점을 뒀다.
핵심은 단연 동물들을 표현하는 퍼펫이다. 벵골 호랑이를 비롯해 염소, 오랑우탄, 말, 기린, 하이에나 등 다양한 동물이 무대 위에서 생생히 움직인다. 단순히 존재만 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 특성에 맞는 섬세한 표현력을 갖췄다. 실제 동물의 움직임과 상당히 유사해 놀라움을 자아낸다.
다만 현실적인 한계가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많게는 3-4명의 퍼펫티어가 하나의 동물을 붙들고 움직이게 되는데, 무대 위 퍼펫티어의 모습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다.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옷을 갖춰 입고 퍼펫을 조종한다. 보지 않으려 해도 보일 수밖에 없다.
퍼펫티어의 실력을 관전하는 재미가 있기도 하지만, 전체 극의 측면에서 보면 동물로 가야 할 시선을 빼앗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파이와 벵골 호랑이의 대면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은 장면에서도 시선이 분산된다. 몰입과 감흥이 떨어지게 되니 못내 아쉽다.
퍼펫 외에 무대의 화려한 비주얼도 인상적이다. 중반 이후부터는 작은 보트가 무대세트의 전부지만, 밋밋하지 않다. 360도 배를 돌려가며 연출해 입체감을 더했다. 또한 밤하늘과 폭풍우 등 변화무쌍한 자연이 조명, 영상과 어우러져 표현됐다. 그 신비로운 빛이 무대를 가득 채우면 벅찬 감정이 일기도.
퍼펫, 퍼펫티어와 함께 무대를 이끄는 건 파이 역의 배우다. 이번 시즌은 박정민과 박강현이 캐스팅됐다. 이중 박정민은 2017년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8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호기심 넘치는 엉뚱한 면모부터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까지 상황에 온전히 몰입해 변화한다. 특히 후반부 모든 감정을 토해내는 열연이 압권이다. 목소리 컨디션이 걱정될 정도로 모든 것을 쏟아부어 관객을 감동시킨다.
박정민은 최근 제4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가수 화사와 ‘Good Goodbye’ 무대를 꾸미며 큰 화제를 모았다. 설레는 멜로 분위기를 선보여 '국민 전남친'에 등극하기도.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순수한 소년미로 무장했다. 공연을 본 관객이라면 그의 또 다른 매력에 빠지게 될 것.
한편 '라이프 오브 파이'는 오는 2026년 3월 2일까지 GS 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사진=에스앤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