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교환이 연기한 '은호'는 '정원'의 고된 서울살이에 유일한 집이 되어주는 인물이다. '게임 개발로 100억 벌기'라는 꿈 하나로 삼수 끝에 서울로 올라온 청년으로, 가진 거라곤 세 들어 사는 단칸방 하나뿐이지만 묵묵히 자신의 꿈을 좇는다. 고향으로 향하던 버스에서 '정원'에게 첫눈에 반한 그는 이후 연인이 아닌 친구로 곁을 지키다, 새해를 기점으로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한다. 고단한 서울살이에 지친 '정원'에게 언제나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주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은 두 사람을 서서히 어긋나게 만든다. 구교환은 특유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현실에 밀착한 연기로 이 인물을 과장 없이, 그러나 깊이 있게 완성해 나간다.
구교환은 "영화를 작업하는 이유는 결국 이 시간 때문"이라며 "최종 결과물인 영화를 관객에게 드리고 싶어서 만들고, 그 반응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극장에서 관객과 대화 나누는 걸 좋아한다"며 GV와 무대인사를 즐겨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도 영화가 완성돼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완성은 관객을 만났을 때"라는 말에는, 개봉 이후에도 영화는 계속 살아 움직인다는 그의 생각이 담겨 있었다.
'만약에 우리'는 원작이 있는 작품이지만 구교환은 아직 원작을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모두가 다 좋은 작품이라고 하는 영화 '대부'도 아직 못 봤다"며 웃은 뒤 "원작이 훌륭한 이야기라는 건 이미 많이 들었다. 이 트리트먼트 자체가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는 걸 알고 있던 찰나에, 선물처럼 시나리오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시사회 때에도 이야기 했듯 저는 산울림의 '너의 의미'도 좋아하지만 아이유의 '너의 의미'도 좋아한다. 이 이야기를 내가 한다면, 정말 좋은 리메이크를 만드는 마음으로 임하자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지금 이 영화가 가져야 할 감정의 결에 집중하겠다는 선택이었다.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로 구교환은 김도영 감독에 대한 신뢰를 꼽았다. 그는 "김도영 감독님은 배우로서도, 연출자로서도 오래전부터 인상 깊게 지켜봐 온 분"이라며 "내가 배우이자 창작자로서 도착하고 싶은 모습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도영 감독은 배우로 활동하던 시절, 2009년 제10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존재감을 알린 인물로, 이후 연출로 영역을 확장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왔다.
구교환은 "감독님이 배우의 감정과 호흡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분이라는 점이 이 작품을 선택하는 데 큰 이유가 됐다"며 "연출자로서의 디렉션 역시 섬세했고, 배우를 통제하기보다 인물이 살아날 수 있는 방향으로 현장을 열어주는 스타일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분과라면 '은호'라는 인물을 더 깊이, 더 사람답게 만들어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촬영 방식 역시 그 신뢰를 전제로 한 구조였다. 구교환은 "리허설을 굉장히 많이 했다"며 "시나리오 지문에 '앉아서 이야기한다' '멈춰서 이야기한다'라고 돼 있어도, 항상 먼저 움직여 보고 그 안에서 선택을 했다"고 설명했다. 흔히 애드리브처럼 보이는 장면들에 대해서도 "애드리브가 많았던 게 아니라, 리허설 과정에서 서로의 아이디어와 감독님의 아이디어를 테이크 전에 이미 넣고 시작한 것"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리허설에서 움직임이 생기면 감독님도 '그럼 움직여보자'고 하신다. 고정 앵글이 팔로잉으로 바뀌기도 하고, 콘티가 기분 좋게 무너지는 순간들이 많았다"며 "그 과정에서 배운 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건 앵글이 아니라 인물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가영과의 호흡에 대해서는 특히 여러 차례 강조했다. 구교환은 "이 영화의 절반은 문가영 배우의 몫"이라며 "정원 역을 맡은 문가영 씨는 상대 배우에게 계속 영감을 주는 배우"라고 말했다. 후반부 강가에서 오열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그는 "나는 내가 그 장면에서 그렇게 울 줄 몰랐다. 촬영에 들어갔을 때 가영 씨의 표정을 보는 순간 너무 서럽게 눈물이 나왔다"며 "계획이 완전히 무너졌지만, 그게 실패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감독님과 가영 씨가 그렇게 반응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고 했다. 그는 "테이크를 여러 번 가도 늘 처음 연기하는 것처럼 감정을 던져주는 배우였다"며 깊은 존중을 드러냈다.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현장의 세밀한 합이 작동했다. 극중에서 남녀 주인공의 거의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연기한다. 20대의 청춘 시절과 40대 초반의 시절도 연기했던 구교환은 "과거와 현재를 나누기 위해 머리 질감, 가르마, 의상 톤이 그라데이션처럼 변한다"며 "이건 감독님과 의상·분장팀을 포함한 모든 스태프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10년이 지나도 은호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대화할 때 예전 모습이 문득 튀어나오듯, 정원이 기억하는 은호의 장난스러운 톤이 현재에도 남아 있으려 했다"고 덧붙였다.
영화의 핵심 문장인 "만약에 우리"라는 대사에 대해 그는 "노래 가사 같은 대사"라고 표현했다. "실제 대화에서는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영화라는 작업은 그런 판타지를 체험하게 해주는 것"이라며 "관객이 이 대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작품이 일부러 비워둔 서사에 대해서도 "의도된 공백"이라고 설명했다. "만남의 시작과 끝만 있고, 그 사이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 빈칸은 관객 각자의 경험으로 채워진다"며 "'만약에 우리'의 마법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구교환은 "이 영화를 많이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다. 영화를 좋아해주는 게 곧 나를 좋아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멀리 있는 배우가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처럼 남고 싶다"며 스스로를 "당신의 주변인 구교환"이라고 소개해 온 이유를 전했다.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는 태도, 현장에서의 집요한 리허설과 신뢰의 합, 그리고 문가영·김도영 감독과 함께 만든 감정의 밀도는 그렇게 '만약에 우리'를 완성해 가고 있었다.
'만약에 우리'는 뜨겁게 사랑했던 은호와 정원이 10년 만에 우연히 재회하며 기억의 흔적을 펼쳐보는 현실공감연애로, 오는 12월 31일 개봉한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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