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 홍동희 선임기자)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가족 영화는 종종 ‘신파’의 함정에 빠진다.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 비극을 전시하거나, 작위적인 감동을 강요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일 개봉한 영화 '슈가'(감독 최신춘)는 그 쉬운 길을 거부한다. 대신 이 영화는 ‘진심’이라는 가장 정직한 무기로 관객의 마음을 두드린다.
영화 '슈가'는 1형 당뇨병 판정을 받은 아들을 위해 법과 규제의 장벽을 넘어 직접 의료기기를 제작한 엄마 ‘미라’(최지우 분)의 실화를 그린다. 소재만 보면 눈물바다를 예상하기 쉽지만, 최신춘 감독의 시선은 놀라울 정도로 담백하다. 질병의 고통을 전시하는 대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가족의 ‘연대’와 ‘의지’에 집중한다. 덕분에 영화는 슬픈 투병기가 아닌, 치열한 생존 드라마이자 성장 영화로서의 미덕을 갖췄다.
이 담백한 연출을 명작의 반열로 끌어올린 것은 배우들의 힘이다. 먼저, 엄마 ‘미라’ 역의 최지우는 우리가 알던 ‘멜로 퀸’의 화려함을 완전히 지웠다. 화장기 없는 얼굴, 헝클어진 머리로 납땜기를 든 그녀에게서 여배우의 자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아이의 혈당 수치에 일희일비하고, 절규하는 모습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 벼랑 끝에 선 엄마의 얼굴이다. 감정을 폭발시켜야 할 때와 삭여야 할 때를 정확히 아는 최지우의 내공은, 그녀가 왜 대체 불가한 배우인지를 증명한다.
아들 ‘동명’ 역의 아역 배우 고동하는 ‘발견’이라 칭할 만하다. 1형 당뇨병이라는 낯선 질병을 받아들이는 12살 소년의 복잡한 내면을 그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소화해 냈다. 주사 바늘의 공포보다 친구들의 시선이 더 무서운 사춘기 소년의 예민함, 그러면서도 엄마를 위로하려 애쓰는 의젓함까지. 고동하는 성인 연기자들 틈에서도 기죽지 않고 극의 한 축을 단단히 지탱한다. 최지우와 주고받는 눈빛 호흡은 이 영화가 가진 리얼리티의 핵심이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극의 분위기를 중화시키는 것은 아빠 ‘준우’ 역의 민진웅이다. 그는 아내와 아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며, 현실적인 가장의 모습을 과장 없이 그려낸다. 아내의 투쟁을 지지하면서도 현실적인 걱정을 놓지 못하는 그의 입체적인 연기는 판타지가 아닌 ‘현실 가족’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묵묵히 곁을 지키는 그의 연기는 화려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큰 울림을 준다.
영화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묵직하게 전진한다. 극적인 배경음악이나 화려한 카메라 워킹 대신,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정공법을 택했다. 이는 실화가 가진 힘을 믿었기에 가능한 선택이다.
다만, 옥에 티가 있다면 사운드 믹싱이다. 과잉된 사운드 전달과 믹싱이 배우들의 세밀한 대사가 묻히는 아쉬움을 남긴다. 과잉된 사운드가 개입하며 몰입을 순간적으로 방해하는 점은 기술적인 마감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가'는 2026년 새해를 여는 첫 번째 한국 영화로서 손색이 없다. 억지 눈물이 아닌,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뜨거운 뭉클함을 원한다면 '슈가'는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1월 21일 개봉.
사진=스튜디오타겟, 삼백상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