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 홍동희 선임기자) 지난 2023년, 디즈니플러스의 '무빙'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한국형 히어로물의 수준을 한껏 높여놨다. 이에 맞서 넷플릭스가 야심 차게 내놓은 대항마 '캐셔로'가 지난달 26일 공개됐다. '돈이 곧 힘'이라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설정을 히어로물에 섞은 이 작품은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권 TV 부문 TOP 10에 이름을 올리며 숫자로는 성공을 거뒀다. 배우 이준호의 차기작이라는 점과 '내 집 마련'을 꿈꾸는 평범한 소시민 히어로라는 설정은 초반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8부작의 막이 내린 지금, 시청자들과 평론가들의 반응은 꽤나 엇갈린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 좋은 킬링타임용 드라마"라는 칭찬 뒤에는 "용두사미 결말", "유치한 연출", "매력 없는 악당"이라는 쓴소리가 따라붙는다. 화려한 배우들과 기발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왜 '캐셔로'는 명작이 되지 못하고 '아쉬운 작품'으로 남았을까. 작품이 거둔 성과와 더불어, 점수를 깎아먹은 결정적인 실수 3가지를 짚어본다.
비판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주연 배우들의 눈부신 활약이다. 주인공 강상웅 역을 맡은 이준호는 전작 '킹더랜드'의 재벌 2세 이미지를 싹 지우고, 월세와 생활비 걱정에 시달리는 흙수저 히어로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손에 쥔 현금이 불타 없어질 때마다 세상 다 잃은 표정을 짓는 그의 생활 연기는 자칫 유치할 수 있는 판타지 설정에 현실적인 공감을 불어넣었다는 평이다.
여자친구인 김민숙 역의 김혜준 역시 계산적이지만 누구보다 연인을 아끼는 현실적인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소화하며 극의 중심을 잘 잡았다. 이들이 보여준 찰떡 호흡은 기존의 비장하기만 한 서양 히어로물과는 다른 한국적인 재미를 선사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력만으로 덮기에 '캐셔로'가 가진 구조적인 구멍은 너무나 컸다.
"왜?"가 없는 악당, 매력 없는 빌런의 한계
'캐셔로'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악당의 부재'다. 정확히 말하면 나쁜 놈들은 있는데, 그들이 가진 무게감이 너무 가볍다. 극 중 주인공들과 싸우는 범죄 조직 '범인회'의 핵심인 조나단(이채민 분)과 조안나(강한나 분)는 그저 주인공의 능력을 빼앗아 약으로 만들려는 욕심쟁이로만 그려진다.
문제는 이들이 왜 그러는지에 대한 이유다. 원작 웹툰 속 악당들이 각자의 상처나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주인공과 부딪혔던 것과 달리, 드라마 속 악당들은 단순히 "더 큰 힘을 갖고 싶다"는 1차원적인 욕망에만 매달린다. 이미 돈 많은 재벌 2세들이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초능력 장사에 목을 매는지에 대한 설명이 빠지면서, 시청자들은 악당에게 무서움도, 불쌍함도 느끼기 어렵다.
특히 조안나는 등장 초반의 카리스마가 무색하게 주인공 일행에게 매번 허무하게 당하거나 작전 실패를 반복하며 '무능한 악당'이 되어버렸다. 배우 강한나와 이채민의 외모와 연기력은 훌륭했지만,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캐릭터는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렸다. 악당이 약하니 주인공의 고생과 희생 또한 그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드라마인가 만화인가... 톤 조절 실패
두 번째 아쉬움은 드라마의 분위기 조절 실패다. '캐셔로'는 청년 가난, 빚 문제 등 지극히 현실적이고 무거운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걸 풀어내는 연출 방식은 마치 어린이들이 보는 특수촬영물(특촬물)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과장되고 유치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주인공이 힘을 쓸 때 나오는 컴퓨터 그래픽(CG)이나, 악당들이 등장할 때 깔리는 비장한 배경음악 등은 실제 배우들의 연기와 겉돌며 몰입을 방해한다. 어떤 시청자들은 이를 두고 "90년대 '후레쉬맨'이나 '파워레인저' 보는 줄 알았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만화적인 상상을 영상으로 옮길 때는 현실에 맞게 다듬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무빙'이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그들의 고통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내 칭찬받았던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심각한 상황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썰렁한 농담이나 과장된 액션은 이 드라마가 어른을 위한 것인지,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8부작의 함정, 헐거워진 이야기와 급한 마무리
마지막으로 지적할 점은 이야기의 밀도다. 총 8부작이라는 비교적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캐셔로'의 중반부는 지루하게 느껴진다. 사건의 전개가 '악당 등장 → 주인공 돈 쓰며 싸움 → 악당 퇴치 → 다시 돈 벌기'라는 단순한 패턴의 반복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정작 다뤄져야 할 중요한 '떡밥'들은 제대로 회수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변호인(김병철 분)이 술을 마시면 간암이 악화된다는 설정은 뒤로 갈수록 흐지부지되었고, 주인공의 능력이 유전인지 거래를 통한 것인지에 대한 설정도 오락가락했다.
무엇보다 마지막 결말은 시청자들에게 허무함을 안겼다. 최종 보스인 조나단과의 싸움은 예상보다 너무 싱겁게 끝났고, 그 과정에서 조안나가 동생 조나단에게 죽임 당하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음에도 이에 대한 감정 정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들이 아파트를 사고 임신 소식을 알리며 해피엔딩을 맞이하지만, 이건 갈등이 잘 해결된 결과라기보다는 "주인공이 이겼으니 다 행복해졌다"는 식의 급한 마무리에 가깝다.
'캐시(?)'는 챙겼지만 '재미'는 놓쳤다?
결과적으로 '캐셔로'는 넷플릭스 순위권 진입이라는 겉보기 성과, 즉 '캐시(돈)'는 챙겼을지 모르나, 시청자들의 마음속에 오래 기억될 '재미'와 '감동'을 남기는 데는 실패했다. 좋은 소재와 배우들의 열연이라는 훌륭한 재료를 가지고도, 헐거운 대본과 유치한 연출이 만나 평범한 작품에 머무르고 만 것이다.
물론 복잡한 생각 없이 화려한 액션과 가벼운 웃음을 즐기고 싶은 시청자에게 '캐셔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K-콘텐츠, 특히 한국형 히어로물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눈요기를 넘어선 이야기의 깊이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작품은 반면교사로 보여주고 있다. 만약 시즌 2가 나온다면, 그때는 부디 지갑 속 현금만큼이나 묵직한 이야기의 무게를 채워 돌아오길 기대해 본다.
사진=넷플릭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