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바운드', '오픈 더 도어'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해 온 장항준 감독이 이번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생애 첫 사극 연출에 도전한다. '왕과 사는 남자'는 영월로 유배 간 단종과 그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장항준 감독은 주인공 '단종'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그는 "계유정난은 성공한 역모다. 하지만 단종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으려 했던 노력은 실현되지 못한 정의였다"며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정의가 역사에서 잊혀져야 한다면, 우리의 역사는 그저 승자의 기록일 뿐이다. 저는 역사의 기능이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단종에 대한 세간의 편견을 깨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장 감독은 "단종은 원손, 세손, 세자를 거쳐 왕이 된 조선 최고의 적통 중의 적통"이라며 "실제로도 굉장히 총명했고, 세종대왕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제왕학 교육을 완벽하게 받은 준비된 국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넘긴 것은 자의가 아니었을 뿐더러, 유배지 영월에서도 끝까지 국왕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던 인물"이라며 "그런 강단 있는 국왕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유배되었을 때 느꼈을 처절함과 그 안에서도 꺾이지 않는 심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장 감독은 이 비극적인 서사의 중심이자 주인공인 단종 역에 배우 박지훈을 낙점했다. 그는 드라마 '약한영웅' 속 박지훈의 연기를 언급하며 "심연에 침잠해 있는, 분노와 감정들이 가라앉아 있다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 눈빛이 좋았다"며 "박지훈은 그런 단종의 입체적인 면모를 눈빛 하나로 보여줄 수 있는 배우였다"고 극찬했다.
영화 속 단종은 수동적인 왕에서 능동적인 인물로 성장한다. 장 감독은 "단종이 마을 사람들과 동화되며 진짜 백성을 위한 왕이란 무엇인지 배우고, 수동적인 삶을 버리는 성군의 자질을 학습하는 설정"이라며 "박지훈은 유배지에서의 처절함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강인한 심지를 완벽하게 체득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장 감독은 박지훈과의 강렬했던 첫 만남을 회상하며 혀를 내둘렀다. 캐스팅 당시 박지훈이 휴가 기간이라 살이 많이 오른 상태였기 때문이다. 장 감독은 "속으로 '아 씨 어떡하지, 저 살이 쉽게 빠질 것 같지 않은데'라고 걱정하며 이게 내 유작이 되겠구나 싶었다"고 농담 섞인 진심을 털어놨다. 하지만 기우였다. 장 감독의 설득 끝에 출연을 결심한 박지훈은 단 일주일 만에 살을 쫙 빼서 나타났다. 장 감독은 "운동하면 근육이 생겨 단종 캐릭터와 안 맞으니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의지가 정말 상당한 친구였다. 볼 때마다 쭉쭉 빠지더라"며 감탄했다. "일주일 만에 식단 조절만으로 반 토막이 되어 나타난 박지훈을 보며 그 독기에 소름이 돋았다"고 회상했다.
현장에서 본 박지훈의 인성 또한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장 감독은 "지훈이는 지금도 대스타지만 현장에서 전혀 들뜨지 않고 성격이 한결같다"며 "20대 같지 않은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 앞으로 더 큰 스타가 돼도 절대 흔들리지 않겠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또한 "현장에서 선배 배우들에게 예우를 다하면서도 연기할 때는 기죽지 않는 모습이 대견했다. 연출가로서 이런 보석 같은 배우를 초창기에 많이 우려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유쾌한 애정을 드러냈다.
박지훈이 그리는 단종의 대척점에는 배우 유지태가 서 있다. 유지태는 극 중 수양대군의 세력이자 거대한 악의 축인 '한명회' 역을 맡아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한다.
장 감독은 유지태를 통해 기존 사극의 '지략가형 한명회'를 완전히 비틀었다. 그는 "우리가 흔히 아는 왜소한 한명회는 정진영, 이덕화 선배님들이 이미 너무 잘하셨다. 그걸 넘을 자신은 없었다"고 고백하며 "대신 기록을 보니 한명회가 키가 크고 풍채가 좋았다는 내용이 있더라. 그래서 존재만으로도 위압감을 주는 '거대 악'을 만들기로 했고, 유지태가 적임자였다"고 캐스팅 비화를 밝혔다.
유지태의 존재감은 현장 분위기를 압도했다. 장 감독은 "유지태 씨는 중앙 정치의 비정함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마을 사람들 앞에 그가 나타났을 때 공기 자체가 달라져야 했다"며 "그의 큰 피지컬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단종과의 대립 구도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완성했다"고 평했다.
그는 "유지태 씨와도 신바이신(Scene by Scene)으로 대본을 한 장씩 넘기며 일대일 리딩을 많이 했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과 영감을 주고받는 과정이 감독으로서도 큰 도움이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장 감독은 "실패한 것들이 정의와 불의의 유무와 상관없이 잊혀지기만 한다면 너무 슬픈 일"이라며 "이번 영화가 단종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치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과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의 이야기로 2월 4일 개봉한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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