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지수 © 뉴스1 권현진 기자
현재 방영 중인 tvN 토일드라마 '언더커버 미쓰홍'(극본 문현경/연출 박선호 나지현/이하 '미쓰홍')의 가장 큰 발견은 단연 한민증권 상속녀 강노라를 연기한 배우 최지수다. 그는 특유의 러블리한 매력과 밝은 에너지로 등장과 동시에 작품의 공기를 단숨에 바꾸며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훔쳤다. 강노라를 오롯이 자신의 캐릭터로 각인시킬 수 있었던 데는 영화 '빅토리'(2024)와 드라마 '하이쿠키'(2023) '바니와 오빠들'(2025) 등 다수 작품을 통해 묵묵히, 꾸준히 쌓아온 탄탄한 필모그래피가 있었다.
'미쓰홍'은 1990년대 말 IMF 전후를 배경으로, 30대 엘리트 증권감독관 홍금보(박신혜 분)가 한민증권의 수상한 자금의 흐름을 파헤치기 위해 20대 말단 사원 홍장미로 위장취업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와 성차별, 내부 비리에 맞서는 홍금보의 반격은 지금의 시청자에게도 유효한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레트로 오피스 코미디라는 외피에 홍금보와 강노라 등 301호 룸메이트들의 연대로 공감까지 끌어내며 시청률도 상승세를 탔다.
그 흐름 속에서 최지수는 한민증권 강필범(이덕화 분) 회장의 숨겨진 딸이자 후계 서열 1순위 상속녀 강노라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주근깨 가득한 귀여운 얼굴에 악성 곱슬머리, 0개 국어 설정의 상속녀는 전형적인 재벌 2세의 캐릭터 공식에서 비껴간 인물이다. 그런 강노라를 사랑스럽게 끌고 가는 힘과 존재감을 보여준 데는 예쁨을 덧칠하기보다 순수한 매력과 더불어 결핍을 드러내는 방향을 택한 배우의 치열한 캐릭터 분석이 있었다. 그는 "노라를 연기하지 말고 최지수로 연기하라"는 감독의 주문처럼, 자신의 결을 캐릭터에 그대로 입혔다.
설 명절을 맞아 뉴스1과 만난 최지수의 실제 모습은 화면 밖에서도 강노라와 다르지 않았다. 2017년 '크리미널 마인드'로 데뷔한 후 연기 활동과 카페·레스토랑·공장 등을 오가며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병행해 온 이야기를 전했다. 또한 학자금 대출 완납도 앞두고 있다며 뿌듯한 마음을 드러냈다. "연예인이 아닌 배우가 되고 싶었다"는 바람에서는 연기를 대하는 진지한 마음가짐도 느낄 수 있었다. 강노라를 연기하기 위해 쓴 캐릭터 일기 두 권, 오디션을 앞두고 종이가 닳도록 연습했다는 고백, 그리고 "변했다는 말을 들으면 연기를 그만둘 것"이라는 단단한 태도로 서기까지, 배우가 성실히 쌓아온 시간에 대해 함께 나눠봤다.
배우 최지수 © 뉴스1 권현진 기자
-한복을 입어본 소감은.
▶아기 때 말고는 한복을 진짜 처음 입어봤다. 이렇게 예쁜 한복을 입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연기할 때가 아니면 앞으로도 이렇게 한복을 입을 날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조선정신과 유세풍'이라는 사극을 찍으며 한복을 입어본 적이 있었지만, 예쁜 한복을 입는 아씨 역할보다는 뒤에서 뛰어가거나 질투하는, 조금은 힘든 처지의 인물이었다.(웃음) 그래서 이번에 이렇게 단정하고 예쁜 한복을 입어보는 게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사극도 어떤 역할이든 시켜만 주신다면 열심히 해보겠다.
-'미쓰홍'은 1회 3.5%로 시작해서 지난 8일 방송된 8회에서 9.4%(닐슨코리아 유료 가구 기준)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달성했다. 10%대 진입도 앞두고 있는데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는 드라마에 출연한 소감은.
▶드라마가 잘될 거라는 건 대본을 읽을 때부터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대본을 읽는데 상상이 많이 갔고, 대본 리딩 때 선배님들이 캐릭터로 앉아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접신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느껴졌다.(웃음) 그래서 이 드라마는 진짜 잘 되겠다고 확신했다. 반응이 좋다는 게 눈에 보이니 역시 제 짐작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고, 선배님들이 연기를 너무 잘해 주셔서 드라마가 잘 되는 게 맞다고 느꼈다. 1화는 시청자들이 등장인물과 처음 만나기 때문에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1화에서는 '저희 이런 인물들이 있어요'라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느낌이었다면 2화에서는 시청자들의 손을 탁 잡는 느낌이었다.
-'미쓰홍'이라는 작품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오디션을 보고 합류했다. 1차 오디션 때 앞에 먹을 게 있었는데 감독님과 관계자분들 것이었다. 하필 오디션 장면이 신혜 언니와 햄버거집에서 힘들다고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과자를 먹어도 되냐고 물었고 허락을 받고 바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게 보였던 것 같고, 일상적인 말투를 보시고 제게 노라를 맡겨주셨다.
-사랑스러운 강노라를 어떻게 만들어가려고 했나.
▶첫 촬영 때 감독님이 노라를 연기하지 말고 최지수로서 연기하라고 하셨다. 단 한 순간도 최지수가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제 자체가 나온 드라마였다. 예쁜 척하면 외려 화면에 잘 안 나오고, 웃기고 밝은 제 진짜 모습이 더 잘 나왔더라. 그래서 보시는 분들이 이런 캐릭터 처음 본다고, 신기한 상속녀라고 해주시는 것 같다.(웃음)
-본인 그 자체의 모습을 입힌 캐릭터를 결과물로 봤을 땐 어땠나.
▶1화 때는 반응이 아주 좋지만은 않았다. 상속녀라고 하면 키 크고 도도하고 시크한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촌스럽고 키 작고 악성 곱슬머리에 어리바리한 모습이라 상속녀 같지 않다는 반응도 많았다. 다행히 2화부터 적응해 주셨다. 저는 친숙하고 미워할 수 없는 상속녀를 원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많이 보인 것 같아 좋았다.
tvN
-강노라의 곱슬머리도 캐릭터만의 매력이 됐다. 캐릭터의 외형을 만들어 간 과정은 어땠나.
▶'미쓰홍' 분장팀과 의상팀 선생님들이 진짜 실력자들이시다. 인물 소개서에 이미 악성 곱슬머리라고 작가님이 써놓으셔서 악성 곱슬을 해야 했다. 그 안에서도 여러 스타일이 있었는데 테스트 촬영 때는 단발에 악성 곱슬이었다. 여러 도전을 거쳐 지금의 강노라 머리가 만들어졌다. 드라마 속 노라의 스타일은 현장 분장 선생님과 의상 선생님들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의상도 90년대 느낌의 비싸지만 특이한 옷들, 망사 옷 등을 많이 입었다. 그 모든 건 의상팀의 분석 덕분이었다. 제도 어떤 색이 어울리는지, 여기서 어떤 옷을 입고 싶은지 의견을 많이 물어봐 주셨다.
-헤어스타일은 가발을 착용하기도 했나.
▶피스를 여러 개 붙였다. 한 시간만 찍어도 풀려서 매 신이 끝날 때마다 분장실에 가서 처음부터 다시 말아야 했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눅눅해지면 큰일이 나기 때문에 신혜 언니 촬영할 때 잠깐 들어가서 말고 나오기도 했다. 고데기를 뜨겁게 해서 말아야 하는 머리라서 정말 엄청난 노력이 들어갔다. 무게도 상당히 무거웠다. 피스를 8개 정도 붙였고 안에 머리도 다 뽑아서 세팅했다. 무거워서 기대면 눌리기 때문에 기대지도 못했고, 잘 때도 숙여서 잤던 것 같다.
-극적인 변신이기도 한데 스스로도 처음 본 모습은 어땠나.
▶첫 촬영장에 갔을 때 스태프분들이 이 정도 폭탄 머리일 줄 몰랐다는 놀란 반응이더라. 저도 평소에 머리를 묶고 다닐 정도로 거추장스러운 걸 안 좋아해서 노라의 머리와 친해지는 데 오래 걸렸다. 노라 의상도 짧은 치마가 많았는데 저는 짧은 치마를 선호하지 않아서 그것도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배우 최지수 © 뉴스1 권현진 기자
-감독 또한 최지수 배우에게 본래 모습대로 연기해 달라고 했던 만큼, 캐릭터와도 접점이 많았을 것 같다.
▶저는 부모님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노라는 엄마에게만 사랑을 받았고 아빠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친구였다. 그 점 빼고는 많이 비슷하다. 사람을 많이 좋아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앞뒤 안 가리고 의리 있게 행동한다. 겉모습은 몰티즈(말티즈) 같아도 거울을 보며 스스로 호랑이라고 생각하는 점도 닮았다. 노라 대사 중에 '얘가 왜 이렇게 말하지?' 싶었던 게 거의 없었다. 노라와 잘 만났다고 느꼈다. 저는 평소 눈치를 많이 보는데 노라도 눈치 덩어리라 연기할 때 크게 다르지 않았다.(웃음) 이덕화 선생님이 워낙 연기를 잘해주셔서 (극 중 부녀 관계처럼) 눈치가 많이 보였지만, 나중에는 제가 친딸과 닮았다고 말씀해 주셔서 처음으로 선생님이 진짜 아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선생님께서 '네 연기는 너만 할 수 있다'며 '별처럼 빛나는 아이야'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났다. 하지만 바로 이어서 부녀간의 차가운 장면을 찍어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폭소)
-노라는 시청자 모두에게 귀여움을 받는 사랑스러운 캐릭터 그 자체인데, 그런 매력을 연기로 만들어간다는 점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노라를 연기할 때 귀여운 척하지 말자는 게 목표였다. 귀여운 척은 눈에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순수함에 중점을 두려고 했다.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 때 묻지 않은 눈으로 대사를 하면서 노라의 눈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신혜 언니나 윤경 언니가 순간순간 멋있어 보였다고, 그런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다 보니 노라와 더 닮아간 것 같다.
-연기에 대해 깊고 진지하게 접근하려고 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렇게 공을 들인 노라를 촬영이 끝나면 보내줘야 했을 땐 허전했을 것 같다.
▶연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닌, 노력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노력한다. 오디션 갈 때 종이를 누가 보면 어떡하나 창피해할 정도로 연습을 많이 한다. 역할로서 일기를 많이 쓴다. 노라 일기장이 두 권 정도 나왔다. 신 찍기 전 밤에 노라 상태를 상상하며 썼다. 이번에는 그림일기도 많았다. 어린아이처럼 한 줄 쓰기도 했다. 그게 연기에 도움이 됐다. 현장 갈 때 꼭 일기장을 챙겨가고, 차 안에서 읽고 대본만 들고 들어간다. 마지막 촬영이 정해지고 일주일 전부터 울었다. 노라를 보내는 것도 슬펐지만 함께했던 사람들을 보내는 게 더 슬펐다.
-본인의 실제 모습을 많이 반영해야 하는 캐릭터인 만큼, 감독의 기대도 크게 느껴졌을 것 같은데 부담감은 없었나.
▶부담이 심했다. 그동안은 에피소드 인물이나 잠깐 나오는 역할이 많았는데, 드라마에서 중요한 인물로 나오는 게 처음이었다. 존경하는 신혜 언니와 호흡을 맞춘다는 것 그 자체가 긴장됐다. 첫 촬영이 햄버거를 먹는 신이었는데, 그때 너무 긴장돼서 기절하고 싶을 정도로 떨렸다. 오늘 아파서 못 찍었으면 좋겠고, 누가 절 기절시켜 줬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긴장했지만 신혜 언니가 햇살 같아서 큰 힘이 됐다.(웃음)
배우 최지수 © 뉴스1 권현진 기자
-드라마가 1990년대 후반 증권사가 배경이다. 1997년생인 만큼, 그 시대 공기를 이해하는 데 어렵진 않았나.
▶부모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엄마가 IMF 때 은행원이셨고, IMF로 은행에서 나오셨다. 드라마에서 IMF가 터진 내용이 나왔는데 엄마가 TV 앞에서 한마디도 안 하셨다고 하더라. 아빠도 IMF 시기에 사업을 하다 큰일을 겪으셨다. 부모님께서 당시 현실적인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셔서 엄청 많이 배웠다. '여자들은 성 앞에 무조건 미스를 붙였어' '커피 스타킹도 두꺼운 걸 신어야 한다'는 등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혹여나 시청자분들께서 드라마가 갑자기 우울해졌다고 느끼실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그게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정말 힘들어서 가족의 손을 놓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더라. 당시의 중요한 문제를 다뤘던 만큼, 배우들도 진지하게 촬영했다. IMF 이후 장면들에 상처받으실 수도 있지만 해결해 가는 과정을 통해 통쾌함과 치유를 느끼셨으면 좋겠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지만, 드라마이기 때문에 해결되는 부분도 있다.
-최지수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시청자 반응 중에 가장 인상 깊은 반응이 있다면.
▶댓글 두 개가 기억난다. 하나는 노라가 스테이크 써는 장면을 보고 남겨준 글이었다. 90년대 분장과 의상을 따라 하면서도 예쁘게 보이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온 배우는 처음 본 것 같다고 했다. 보여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인물로서 설득하려는 게 보인다고 했다. 배우를 찾아보지 않는 사람인데 처음으로 이름을 검색했다고 하더라. 그 댓글이 제가 생각하는 연기 방향과 같았다. 예쁜 것도 아름다운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결핍이 있는 모습을 연기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라의 미스코리아 머리도 사실 노라가 원한 게한 게 아니라 엄마의 강요였다. 그 머리조차 노라에게는 결핍의 상징이었다. 그 시대에선 예쁘다고 하지만, 엄마에 대한 결핍이 있는 머리인 셈이다. 또 하나는 '신인인 줄 알고 찾아봤는데 10년간 연기한 걸 보고 왜 이제 빛이 나는지 알겠다'는 댓글이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빛을 발한다는 말이 너무 행복했다. 지금까지 해온 게 헛되지 않았다고 느꼈다.
<【한복인터뷰】 ②에 계속>
aluemchang@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