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억 재산 한 푼도 상속 안 해" 故황정순, 유서 파장..숙환으로 사망 12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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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2026년 2월 17일, 오전 08:18

[OSEN=최이정 기자] 한국 영화계를 대표했던 원로배우 고(故) 황정순이 세상을 떠난 지 12년이 흘렀다.

황정순은 2014년 2월 17일 치매와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1925년 8월 20일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난 그는 1960~70년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어머니상’으로 대중의 깊은 사랑을 받았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 따르면 황정순은 무려 377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41년 허영 감독의 영화 ‘그대와 나’로 데뷔한 그는 이후 ‘파시’(1949), ‘여성일기’(1949) 등을 통해 주연 배우로 발돋움했다. 1957년 이강천 감독의 ‘사랑’으로 제1회 한국평론가협회상 최우수여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1960년대 들어 그는 ‘박서방’(1960), ‘마부’(1961), ‘김약국의 딸들’(1963), ‘굴비’(1963) 등에서 자상하면서도 엄격한 어머니 역할을 맡으며 ‘국민 어머니’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1967년 ‘팔도강산’을 시작으로 한 연작 시리즈는 황정순을 시대의 어머니로 각인시킨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의 연기가 늘 온화한 어머니상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육체의 고백’(1964)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양공주 역할을, ‘민며느리’(1965)에서는 악독한 시어머니 역을 맡아 폭넓은 스펙트럼을 증명했다. 표현적인 연기와 외향적 에너지로 동시대 배우들과 차별화된 개성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0년대 이후 영화 산업이 침체기에 접어들자 그는 TV와 연극 무대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KBS 드라마 ‘보통사람들’에서 선보인 세련된 신식 할머니 연기는 또 다른 전성기를 열었다.

황정순의 별세 다음 달에는 고인의 유서가 공개되면서 유산을 둘러싼 다툼이 주목을 받기도. 황정순의 사망 이후 80억원 대의 서울 삼청동 주택을 두고 유산상속 분쟁이 일어난 것이다.

2014년 3월 MBC 시사프로그램 ‘리얼스토리 눈’에서 공개된 고인의 유서(조카손녀 공개)에는 ‘지금까지 나를 희생해 너희들을 뒷바라지 한 걸로도 충분하니 내 재산을 한 푼도 상속할 수 없다. 용돈 한 번 준 적도 없고, 고작 1년에 두세 번 식사 대접한 게 전부이니 배신감과 함께 인생의 허무함을 느낀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의붓아들은 고인이 치매를 앓았기 때문에 내용을 믿을 수 없다고 맞섰던 바다.

이처럼 고인의 세 명의 양자와 양녀가 유서를 둘러싸고 다툼을 빚은 가운데 제작진은 고인이 수십년째 젊은 연기자들을 위한 장학회를 운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실제로 고인은 서울예대 이사를 역임하고 ‘황정순 장학회’를 설립해 후배들을 지원하며 배우 이전에 한 명의 교육자, 선배로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nyc@osen.co.kr

[사진] OSEN DB,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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