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그를 깊이 흔들었던 건 '10년의 무게'였다. 이종필 감독과 고아성이 10년 전부터 이 작품을 준비해왔다는 서사를 알고 나니, 뒤늦게 합류한 주연 배우로서 책임감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동시에 찾아온 것이다. 문상민은 "어느 순간 제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릴 정도로 긴장됐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다시 숨 쉬게 한 건 상대역 고아성의 사려 깊은 배려였다. 어느 날 밤, 감독으로부터 "고아성이 상민이가 우리 사이에서 외로울까 봐 마음 쓰인다고 하더라"는 말을 전해 들은 순간, 문상민의 팽팽했던 긴장은 무너져 내렸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정말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왔어요. 미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눈물이 멈추지 않아 도저히 지하철을 탈 수가 없었죠." 그는 사람들 눈을 피해 논현역 지하철역 대신 반대편 버스 정류장 방향으로 무작정 걸으며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펑펑 울며 걷던 그의 눈앞에 거짓말처럼 한 얼굴이 나타났다. 버스 정류장 전광판에 걸린 변요한의 생일 축하 광고였다. 문상민은 "전광판 속에서 요한이 형이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시 웃고 있는데, 그 표정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형에게 연락을 드렸다"고 말했다.
후배의 목소리만 듣고도 흔들림을 감지한 변요한은 망설임없이 "어디야? 당장 심야 카페로 와"라며 그를 불러냈다. 문상민은 "가서 작품 얘기는 하나도 안 했다. 그냥 형이 요즘 일하면서 느끼는 즐거운 고민들,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두 시간 동안 들려주셨는데 그 시간이 저에게는 엄청난 위로가 됐다"며 변요한과의 영화 같은 번개 만남이 큰 힘이 되었음을 밝혔다.
현장에서의 고아성은 문상민에게 '미정' 그 자체이자 든든한 등대였다. 문상민은 "천만 배우를 처음 뵙는 거라 감개무량했는데, 리딩을 위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누나는 이미 고아성이 아닌 미정의 아우라를 입고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촬영이 없는 날에도 현장에 남아 문상민을 지켜봐 주던 고아성의 존재는 그에게 절대적이었다. "누나가 멀리서 바라봐주고 응원해 주던 그 마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경록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고아성이 없었다면 문상민도 없었을 것"이라는 극찬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아이슬란드 로케이션 촬영은 세 사람의 유대감이 정점을 찍은 순간이었다. 매니저 없이 세 사람만 떠난 일주일간의 여정에서, 운전을 못 하는 이종필 감독과 갓 면허를 딴 '장롱면허' 문상민을 대신해 운전대를 잡은 것은 고아성이었다. 문상민은 "누나가 하루에 네다섯 군데가 넘는 험난한 촬영 장소를 일주일 내내 직접 운전해서 다녔다. 저와 감독님은 뒷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게 '고아성 파이팅!' 하고 외치는 것뿐이었다"며 미안함 섞인 웃음을 지었다. 그는 "그때 너무 미안해서 한국에 오자마자 운전 실력을 정말 빡세게 키웠다"며 이제는 운전에 자신감을 보였다.
변요한과의 강렬했던 키스신에 대해서도 심도 깊은 비화가 이어졌다. 문상민은 "연기 인생에서 가장 진했던 키스신이었는데, 요한이 형이 정말 큰 용기를 내주셨다고 생각한다. 가짜로 흉내만 내면 감정의 흐름이 깨질 것 같아 '딱 한 번에 확실하게 가자'고 마음을 모았다"고 밝혔다. 촬영 직후 본능적으로 앞에 있던 물을 마시고 가글을 하던 문상민의 모습과, 그를 향해 던진 변요한의 날 선 애드리브는 두 배우의 완벽한 신뢰가 만들어낸 명장면이었다. 문상민은 "나중에 영화로 보니 형의 애드리브가 정말 경록과 요한의 관계를 완벽하게 보여주더라"며 감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종필 감독을 향한 각별한 마음도 잊지 않았다.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감독 사무실로 출근해 세 가지 버전의 연기를 녹음해 들려주던 신인의 열정은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다. 문상민은 "감독님이 저에게 기꺼이 시간을 할애해 주신 게 너무 감사해서 하나하나 다 확인받고 싶었다. 경록의 걸음걸이, 표정 하나까지 감독님과 함께 밖에서 걸어보며 맞춰나갔던 그 시간들이 현장에서 '내 연기가 맞다'는 확신으로 돌아왔다"고 전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던 세 사람이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며 삶과 사랑을 마주하게 되는 영화 '파반느'는 지금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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