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소녀 '메이블'은 할머니와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연못이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이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어느 날, 사람의 의식을 동물 로봇으로 옮기는 혁신적인 '호핑' 기술을 우연히 체험하게 된 '메이블'은 동물 세계에 잠입하고, 열정적인 포유류의 왕 '조지'를 비롯해 다양한 개성을 지닌 동물들과 친구가 된다. 이후 연못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게 되고 모두가 깜짝 놀랄 기상천외한 작전을 펼치게 되는데.
▶비포스크리닝
'호퍼스'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3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속편이 아닌 오리지널 작품이기에 더 반갑다. 2020년대 제작된 '소울', '엘리멘탈'에 이은 성공적인 IP 탄생에 대한 기대가 높다.
픽사는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속편 대신 오리지널 작품들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감히 픽사의 근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토이 스토리' 시리즈 만큼은 아니어도, 그에 준하는 새로운 IP의 발굴이 픽사에겐 절실한 까닭이다. 디즈니+와 같은 OTT 스트리밍 플랫폼의 안착 이후로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볼 이유가 점점 흐려지고 있기에,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오리지널 작품의 위험성이 더욱 커지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말이다.
'호퍼스'에 걸린 기대가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당장 전작 '엘리오'가 아쉬운 성적을 거뒀다. 지난해 6월 개봉 첫 주 주말 2100만여 달러를 벌어들인 '엘리오'는 북미오프닝에서 픽사 장편 애니메이션 중 역대 최저 수치를 보였다. 국내 관객 수 역시 60만여 명에 그쳤다.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했다. 대박을 터뜨렸던 속편 작품 '인사이드 아웃2'와는 더욱 비교되는 양상이었다.
호재는 있다. 픽사 작품은 아니지만, 디즈니의 '주토피아2'가 가장 최근 국내 관객 800만 명을 돌파하며 동물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와 관심을 높였다. '호퍼스'는 비버가 메인 주인공이지만, 다양한 동물들 또한 중요하게 비춰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그널로 다가온다.
▶애프터스크리닝
'호퍼스'는 픽사에 쏠린 세간의 우려를 씻을 수 있을까. 베일을 벗은 '호퍼스'는 우선 가장 '픽사스러운' 애니메이션으로 다가온다. '호핑'이라는 공상 과학 기술의 상상력에 톡톡 터지는 유머를 덧대어 완성했다. 전달하려는 메시지(환경 보호)는 어색함이나 거부감 없이 명료하게 반짝인다.
'애니멀 어드벤쳐'를 표방한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이야기는 픽사의 장기다. 귀여움으로 무장해 관객들의 심리적 장벽을 뚫어낸 주인공들이, 끝내 가슴 찡한 스토리를 선사하는 것. 픽사의 전성기를 아는 팬들이라면 이만한 향수가 없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그랬고, '월-E'와 '인사이드 아웃', '소울'이 픽사 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다.
예고편 공개 후부터 '아바타 동물 버전'으로 홍보가 됐다. 시놉시스가 매우 유사하다. 인간이 클론에 의식을 옮겨 그들의 세계에 잠입해 핵심인물과 친해진 뒤 인간들과 맞서는 내용. '호퍼스'도 이를 알고 있듯, 극 중 대사에서도 주인공 메이블이 '아바타'를 언급하기도 한다. 픽사와 20세기 스튜디오가 같은 디즈니 산하라서 가능한 유머로 읽힌다. 다만 '호퍼스'를 관람하고 나온다면 '아바타'보단 일본 지브리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의 향수가 강하게 일렁일 듯 싶다.
마냥 귀엽고 무해한 주인공들과 이들을 둘러싼 이야기는, 유치하지만 시종일관 피식거리는 유머들로 넘친다. 픽사의 그간 작품들 중에서도 유머 함량과 순도가 꽤 높다. '인간 어른의 입장에서' 보기에 다소 무리수로 읽히는 장면들도 더러 있지만, '픽사적 허용'으로 눈감아주기엔 충분하다.
비버 뿐만 아닌 여러 동물 캐릭터들의 군상극적 재미도 있다. 각기 다른 종의 습성과 성향을 코미디적 장치로 활용하는데,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연대는 후반부에 펼쳐지는 작전을 설득력 있게 지탱한다. 기상천외한 이 작전의 디테일은 지극히 동화적이지만, 감정적 합의가 충분히 선행되기에 이질감은 크지 않다.
독특한 동물 세계관을 이해하며 가벼운 유머들에 가랑비 젖듯 빠져들다보면 주된 메시지인 '환경 보호' 아젠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메시지는 적잖이 무거운 내용이지만 역시 이를 중화시키는 건 발군의 유머다. 환경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직설적 고발이 아니라, 정서적 체험을 통한 설득에 가깝다. 거창한 구호나 이념적 대립으로 소비하지 않고, 착실하게 '공존'을 내세운다. 포유류의 왕인 비버가 자신들의 터전을 파괴하려는 인간들까지도 연대의 대상에 넣으려 하는 모습은, 인간 관객으로서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기도.
'호퍼스'는 픽사의 오리지널 성적 부진에 대한 우려를 잠시 거둬도 괜찮다는 기대를 준다. 그리고 픽사가 왜 여전히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야 하는지 그 이유도 차분히 상기시키는 작품으로 보인다.
iMBC연예 백승훈 | 사진출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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