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파라마운트,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 넷플릭스 로고(사진=AFP)
우리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위기를 완전히 해소했다고 보는 건 어불성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글로벌 미디어 기업 간 재편은 계속되고 있고, 자본과 IP가 소수 기업으로 집중되는 흐름 역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워너 인수의 주체가 넷플릭스에서 파라마운트로 바뀌었을 뿐, 시장은 여전히 대형 미디어 기업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 OTT와 제작사의 구조가 이런 글로벌 흐름에 취약하다는 데 있다. 제작 단가와 인건비는 글로벌 수준에 가까워졌지만, 매출의 상당 부분은 국내에서 발생하는 구조다. 토종 OTT는 매년 큰 비용을 콘텐츠에 투입하지만, 그 성과는 장기 자산으로 충분히 축적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제작사 역시 작품이 성공한다 해도 후속 시즌이나 해외 확장 권리를 온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많이 만들고 투자해도 산업의 체력은 쉽게 두터워지지 않는다. 작품이 흥행해도 그 이익이 다음 도전을 떠받칠 자본으로 충분히 축적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작은 충격에도 산업 전체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번 넷플릭스의 워너 인수 무산은 위기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대응할 시간을 조금 더 번 것 정도에 불과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안도감이 아니라 방향 전환이다.
◇국내 콘텐츠 생태계 강화 골든타임
OTT는 단기적 화제작 경쟁을 넘어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IP를 키워야 한다. 제작사들도 단순 외주 중심에서 벗어나 자산을 함께 축적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성공한 콘텐츠가 다음 콘텐츠의 투자 재원이 되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국내 플랫폼과 제작사 간 관계도 재설계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단기 계약과 일회성 투자를 지속한다면 공멸의 길이다. 공동 기획과 수익 공유, 장기 파트너십을 통해 위험과 성과를 함께 나누는 구조가 자리 잡아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 자본과의 협상에서도 일정 부분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제작비 지원에 머무르기보다 IP를 보유한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세제와 투자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해외 진출 과정에서 국내 기업의 권리가 보호되도록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일도 필요하다. 단기 부양이 아니라 체질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부가 공언해 온 토종 OTT 육성이 실행으로 이어져야 할 때다. 그런 맥락에서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도 더는 미뤄져서는 안 된다.
K콘텐츠의 창작 역량은 이미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성과가 일회성 흥행에 그치지 않고 산업의 힘으로 축적되도록 하는 것이다. 위기는 미뤄졌을 뿐이다. 준비하지 않으면 다음 파도는 더 크게 밀려올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