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브(왼쪽)와 이세계아이돌(사진=블래스트패러블엔터테인먼트)
시장 확대의 배경에는 K팝 산업의 구조적 변화도 자리하고 있다. 시장 포화와 경쟁 심화로 활동 기회가 줄어든 가운데, 공백을 겪은 인력의 재진입 수요가 맞물리며 버추얼 아이돌로의 유입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한 차례 활동을 마친 아이돌들이 ‘제2의 무대’로 버추얼 아이돌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른바 ‘경력직 아이돌’들이 재데뷔에 나서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버추얼 아이돌 멤버 상당수는 재데뷔 아이돌이거나 오랜 연습생 생활 끝에 데뷔 기회를 얻지 못한 인물들로 나타났다. 이데일리가 최근 데뷔한 버추얼 아이돌 10개 팀을 분석한 결과, 절반 이상이 재데뷔 사례이거나 5년 이상의 연습생 경력을 지닌 것으로 파악됐다.
버추얼 아이돌로 새 출발에 나선 멤버 A씨는 이데일리에 “(처음 버추얼 아이돌 데뷔 제안을 받았을 때) 시간과 노력을 몇 년 동안 다시 투자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다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렘이 더 컸다”며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멤버 B씨는 “처음에는 내 진짜 모습이 아닌 캐릭터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혼란도 있었지만, 동시에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며 “결국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일이었다”고 털어놨다.
이들에게 버추얼 아이돌은 단순한 선택지를 넘어 멈췄던 시간을 다시 이어가는 통로다. A씨는 “활동이 멈췄을 때는 20대가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 경험이 있었기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B씨 역시 “해체 당시 팬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가장 마음에 남았다”며 “어떤 형태로든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버텨왔다”고 밝혔다.
버추얼 아이돌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외모 중심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버추얼 아이돌로 활동 중인 C씨는 “현실에서는 외적인 조건이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이곳에서는 목소리와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전했다.
버추얼 아이돌 미라클(위)과 오위스(사진=어코드엔터테인먼트올마이애닉도츠)
가요계 역시 이러한 흐름을 새로운 기회로 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일부 버추얼 아이돌 기획사가 7년 재계약 시점을 앞둔 아이돌이나 활동 기회를 얻지 못한 연습생에게 버추얼 아이돌 데뷔를 제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기존 아이돌 출신 멤버를 중심으로 팀을 구성하거나, 전원 경력직으로 꾸려진 버추얼 그룹이 등장해 주목받기도 했다.
버추얼 아이돌 기획사들은 경력직 아이돌을 기용한 배경으로 ‘무대 경험과 진정성’을 꼽았다. 기획사 관계자는 “버추얼 아이돌은 기술과 세계관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무대 경험과 아티스트로서의 태도가 핵심”이라며 “경력직 멤버들은 관객과 호흡하며 감정을 전달해 본 경험이 있어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티스트의 미세한 감정 표현과 움직임이 캐릭터의 생동감으로 이어지는 만큼, 표현력이 뛰어난 멤버들이 중심축 역할을 한다”며 “팬들과의 교감 방식까지 이미 체득하고 있어 팀의 완성도를 빠르게 끌어올린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경력직과 연습생이 함께하는 구조는 완성도와 성장 서사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며 “경력직 멤버들이 방향을 잡아주고, 신규 멤버들이 새로운 에너지를 더하면서 팀의 설득력과 몰입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설득력과 아티스트의 서사”라며 “버추얼 아이돌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시장 성장세 역시 가파르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전 세계 버추얼 아티스트 시장 규모는 2023년 약 10억 8279만 달러(약 1조 6414억 원)에서 2029년 40억 4400만 달러(약 6조 1302억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는 향후 버추얼 아이돌 경쟁의 핵심이 기술을 넘어 ‘서사와 진정성’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요계 관계자는 “버추얼이라는 형식 속에서도 결국 팬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티스트의 경험과 감정”이라며 “버추얼 음악 시장에서 경력직 아이돌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시장이 빠르게 커지는 만큼 고민도 함께 커지고 있다. 캐릭터와 실제 인물 사이에서 생기는 혼란이나 팬들과의 거리감 등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한계를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향후 버추얼 아이돌 시장의 경쟁력을 가를 핵심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