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꿈을 지켰더니 꿈이 나를 지켜줬다” 영화에 미친 감독 박루슬란 [영화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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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BC연예,

2026년 5월 06일, 오전 11:39

중앙아시아의 낯선 이방인에서 한국 영화계의 묵직한 주역으로 거듭난 이름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고려인 4세, 박루슬란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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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 '루슬란'은 중앙아시아어로 '사자'를 뜻한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 강인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그는 4년 전 한국으로 귀화하는 생애주기적 결단 앞에서도 성만 한국식으로 바꾸었을 뿐, 이름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먼 조상의 나라였던 한국으로 건너와 영화 공부를 시작하고, 마침내 '한국인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틱한 영화다. 그에게 영화는 단순한 직업적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20여 년 전 어느 날 계시처럼 찾아온 운명이었고, 때로는 생계를 위협하는 지독한 굴레이자, 그럼에도 결코 놓을 수 없는 유일한 생존의 이유였다.

그의 영화 인생은 기묘한 일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한국 유학 시절,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어학과를 전공하던 청년 박루슬란은 어학연수차 방문한 서울의 한 극장에서 생전 처음 겪는 경험을 한다. 상영 중인 영화가 너무나 지루한 나머지 꾸벅꾸벅 졸음에 빠져들었는데, 그 깊은 잠의 경계에서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때린 것이다.

"영화를 찍어라." 본인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생각이라기엔 너무나 생소하고 뚜렷했던 그 목소리는 예술과는 아무런 접점도, 연유도 없던 청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날 이후 그는 마치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단 한 번도 영화감독 외의 삶을 가슴에 품어본 적이 없다. 미래에 대한 보장도, 예술적 배경도 전무한 상태에서 시작된 이 지독한 짝사랑은 그렇게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의 배신 없이 이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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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국내 최고의 예술 엘리트들이 모이는 한국예종에 진학하며 본격적인 경쟁의 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그의 주변에는 나홍진, 정주리 등 훗날 한국 영화를 이끌 거장들이 즐비했다. 그 틈바구니에서 박루슬란은 스스로를 더욱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나를 외국인이나 동포로 보지 말고, 똑같은 리그에서 뛰는 경쟁자로 봐달라"는 간절함은 그를 지독한 독종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독기는 곧바로 결과물로 증명됐다. 장편 데뷔작 '하나안(Hanaan)'은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청년들의 방황과 '약속의 땅'을 향한 갈망을 날카롭게 그려내며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물결'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그는 타이베이 영화제 신인감독 대상과 하와이 영화제 넷팩상을 거머쥐며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첫 영화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박루슬란 감독은 "영화제 수상으로 이후의 내 영화 인생은 순탄할거라는 착각을 했었다"며 너스레 웃음을 지었다. 승승장구 할줄 알았지만 차기작을 내놓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고. 하지만 그는 1979년 소련 최초의 식인 살인마 사건을 다룬 스릴러 '쓰리(THREE)'를 통해 장르 영화로서의 탁월한 연출력을 입증했다.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사말 예슬랴모바 등 세계적인 배우들과 협업한 이 영화는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 상을 수상하며 박루슬란이라는 이름 석 자를 한국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또한 비극적인 비행기 추락 사고의 트라우마를 딛고 보육원 아이들과 축구로 교감하는 '아르기막: 천상의 말'에 이르기까지, 그는 중앙아시아의 서늘한 정서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쉼 없이 렌즈에 담아왔다.

박루슬란의 영화 제작 방식은 이른바 '헝그리 미학'으로 요약된다. 그는 현장에서 모니터 뒤에 우아하게 앉아 권위를 누리는 지휘관이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오히려 그는 춥고, 배고프고, 모든 것이 결핍된 극한의 환경에서 창작의 본능이 가장 날카롭게 깨어난다고 고백한다. 따뜻하고 안락한 세트장에서는 오히려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루즈해진다는 그는, 제작비가 부족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비로소 '전투 모드'로 전환되어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뽑아내는 야전형 창작자다. 그가 연출뿐만 아니라 제작까지 겸하는 멀티플레이어가 된 것도 사실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연출에만 집중하고 싶지만, 그렇게 해서는 기회조차 오지 않을까 봐 직접 판을 짠다"는 그의 말에는 한국 영화계라는 거친 정글에서 살아남은 야생 사자의 생존 전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화에 대한 그의 집착은 때로 광기에 가까운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한때 생계를 위해 식당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크게 실패하여 막대한 빚을 졌을 때, 그는 좌절의 구렁텅이에서조차 영화적인 사고를 멈추지 않았다. 빚더미에 올라앉아 그가 가장 먼저 내뱉은 탄식은 의외였다. "이 빚이 식당 때문이 아니라 영화를 찍다 생긴 것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들이 들으면 정상적인 사고가 아니라고 고개를 저을 법한 이 발언은, 그가 자신의 인생에서 겪는 모든 고난과 희생의 가치를 오직 '영화'라는 필터로만 걸러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루슬란은 긴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자신의 인생을 '기적'이라는 단어로 요약했다. 그는 "지금 상황에서 이런 영화를 찍는다는 게 주변에서는 말도 안 된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이 꿈을 지켰기 때문에 이 꿈도 나를 지켜주고 있는 것 같다"는 유치하지만 단단한 믿음을 전했다. 그는 예술가들에게 멋진 멘트를 날리기보다 현실적인 위로를 건네고 싶어 했다. "예술을 안 한다고 의미 없는 인생은 아니지만, 이 길을 선택했다면 끝까지 미친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진심이다.

이러한 그의 지독한 집념은 올해 하반기 개봉 예정인 신작 'H-521(가제)'로 이어진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실제 시위 상황을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배우 음문석과 강기영이 합류해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망해도 영화 일을 하면서 망하고 싶다"는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다. 자신의 꿈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영화에 미친 사람으로 남겠다는 박루슬란. 그의 영화가 기대된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 고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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