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속의 양’, 거장이 제시한 휴머노이드와 관계맺는 법 [시네마 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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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2026년 6월 05일, 오후 05:42

'상자 속의 양'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번 신작의 제목으로 사용한 '상자 속의 양'은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유명 소설 '어린 왕자' 속 에피소드에서 따왔다. 지구에 불시착한 소행성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 화자인 조종사는 어린 왕자의 요구에 따라 양을 그려주지만 어린 왕자가 그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자 상자 하나를 그리고 그 속에 양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자 어린 왕자는 크게 만족한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상상력'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할 줄 아는 어린 왕자의 순수하고 자유로운 사고가 어른들에게 필요하다.
'상자 속의 양'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상자 속의 양'을 제목으로 제시한 이유는 뭘까. 이번 영화의 어린 주인공 카케루(쿠와키 리무 분)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 속 '상상력'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운 휴머노이드다. 그 때문에 상자 속의 양은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차이를 확인시켜 주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상자 속의 양'은 관객들에게 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제시된 하나의 태도이기도 하다. 특히나 의견이 분분한 영화의 결말을 받아들일 때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 모호한 결말이라는 틀로 제시된 상자 안에 상상력으로 채워야 할 분량이 있다.

건축가인 오토네(아야세 하루카 분)와 건축회사의 2대 사장인 켄스케(다이고 분) 부부가 휴머노이드 아들을 집에 들인 이유는 죽은 아들 카케루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2년 전 불의의 사고로 외아들 카케루를 잃은 부부는 우연히 리버스(Rebirth)라는 회사로부터 공짜로 휴머노이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아들의 기억이 담긴 영상 및 이미지 자료를 보내면, 리버스에서 이를 기반으로 아들과 똑같은 모습을 한 휴머노이드 인간을 보내주는 서비스다.

오토네는 아들과 꼭 닮은 휴머노이드 카케루의 모습에 감동하지만, 아빠 켄스케는 이를 거북하게 느낀다.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려는 카케루에게 그는 "아저씨"라 부르라고 말할 정도다. 휴머노이드 카케루는 식사를 할 수 없으며 물을 가까이해서도 안 된다. 가까운 반경에 주인이 없으면 저절로 작동을 멈추고, 잠을 자는 대신에 충전기에 앉아 충전해야 한다.
'상자 속의 양'

부부의 일상은 카케루로 인해 흔들린다. 시간이 흐르고, 카케루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관점은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에 그를 아들 카케루처럼 여겼던 오토네는 카케루와는 미묘하게 다른 휴머노이드 카케루의 모습에 내적 갈등을 겪는다. 때때로 감춰왔던 죄책감이 자극받은 탓에 카케루에게 못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반대로 그를 휴머노이드로만 여겼던 켄스케는 아들 카케루처럼 전철 역 이름을 줄줄이 외우고 그의 기억을 간직한 휴머노이드와 조금씩 거리감을 좁혀간다. 그는 아들 카케루의 기억이 남아있는 듯한 휴머노이드 카케루를 이용해, 아들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혀내고 싶어 한다. 이처럼 부부는 자신들의 감정을 비치는 거울로 카케루를 대하며, 자신들만의 감정 속에서 허우적댄다.

그러나 '상자 속의 양'이 그리는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대체품, 혹은 감정을 수용하는 기계로만 끝나지 않는다. 놀랍게도 이 휴머노이드는 주인에게 종속되게 했던 GPS를 떼고, 자신과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면서 정체성을 찾아간다. 그리고 감독은 극 중 기술자의 말을 빌려 인간의 자기중심성을 짚는다. "(휴머노이드)아이가 감정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면 그것은 당신의 감정입니다. 이 아이는 당신의 과거 산물이지요."
'상자 속의 양'

부부는 결국 휴머노이드 아이와 그의 친구들을, '그들의 뜻에 따라' 숲속에 두고 돌아나온다. 칸 영화제 이후에 여러 말이 나왔던 '문제적 결말'이다. 왜 휴머노이드 집단이 숲속을 자신들의 공간으로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다. 감독이 결말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 '거리두기'인 듯하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존재가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거리두기는 나의 감정대로 대상을 해석하지 않고, 그가 표현하는 자기 자신 그대로를 수용하는 데서 시작한다. 어린 왕자의 '상자 속의 양'을 바라보는 태도로 영화를 바라보자면, 영화의 마지막은 일종의 열린 결말이다. 부부와 카케루는 이별을 한 듯 보이지만, 영영 이별한 것은 아니며 각자의 세계에서 잘 살아가다 때때로 재회하게 될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최근작 중에서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지만, 생소한 캐릭터와 이야기 사이에서 거장의 생각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늘 그렇듯 고레에다 감독은 아역 배우 캐스팅에 일가견이 있는데, 이번 작품에 출연한 쿠와키 리무 역시 휴머노이드 아이의 역할을 자연스러운 연기력으로 그럴듯하게 해냈다. 아야세 하루카의 남편 역으로 다이고를 캐스팅한 것은 의외이나, 이질적인 캐스팅이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린다. 상영 시간은 127분. 10일 개봉한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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