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프’ 언론시사회 직후 만난 나홍진 감독의 머릿속은 여전히 편집실에 머물러 있었다. 전날 밤에도 작업실을 찾아 사운드를 다시 확인했고, 인터뷰를 마친 뒤에는 곧장 후반작업실로 향할 예정이라고 했다. 칸국제영화제 첫 공개 이후에도 편집을 거듭하고, 컴퓨터그래픽(CG)과 사운드 작업을 계속 이어가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개봉 직전까지 단 한 장면, 단 한 소리라도 더 완성도 높은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영화 '호프' 나홍진 감독.(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나 감독에게 ‘호프’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작품이다. 시사회를 마쳤지만 영화는 여전히 손을 거치고 있다. 개봉을 앞둔 지금도 작품을 끊임없이 다듬는 과정 자체가 연출의 일부라는 생각이다.
나 감독은 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지금은 기분이 좋고 나쁘고를 생각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마지막까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다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호프’는 칸 공개 이후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거쳤다. 사운드 밸런스를 다시 조정했고 일부 장면의 CG도 수정했다. 편집 과정에서 덜어냈던 장면 일부를 복원하는 작업도 이어졌다. 그는 “음악이 중요한 영화인데 상영 환경에 따라 사운드가 다르게 들리는 부분이 있었다”며 “관객들이 극장에서 가장 좋은 상태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끝까지 손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CG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나 감독은 “기술적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가장 큰 과제였다”며 “배우의 연기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구현하기 위해 다시 만들다시피 한 장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호프’는 ‘추격자’, ‘황해’, ‘곡성’을 연출한 나홍진 감독이 약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비무장지대 인근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이 마을에 출몰한 호랑이를 쫓던 중 상상조차 하지 못한 존재와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황정민을 비롯해 조인성, 정호연,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이 출연했다.
영화 '호프' 포스터.(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호프’에는 외계인이 등장하지만, 나 감독은 이 작품을 특정 장르 하나로 규정하는 데는 신중했다. 액션과 스릴러, 판타지, 초자연적 요소가 유기적으로 뒤섞인 만큼, 장르적 분류보다 관객이 극장에서 어떤 감각을 경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호프’를 어떤 장르라고 불러야 할지 저도 늘 고민했다”며 “SF인지 액션인지보다 관객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가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외계인 역시 장르를 규정하기 위한 소재가 아니라 세계관을 확장하기 위한 표현 방식이었다. 전작 ‘곡성’에서 다뤘던 초자연적인 세계를 한 단계 더 밀고 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존재라는 설명이다.
나 감독은 “‘곡성’보다 조금 더 심화된 세계를 고민하다 보니 우주라는 공간과 새로운 존재가 필요했다”며 “그 과정에서 외계인이라는 형상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8년 가까운 제작 기간 동안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외계인의 디자인이었다. 영화에 적용한 뒤 다시 수정하고, 또 새로운 방향을 찾는 과정을 반복했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시행착오 역시 제작 과정의 일부였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나 감독은 “외계인 디자인도 거의 8년에 걸쳐 계속 변화했다”며 “영화에 적용해 보고 문제점을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 시간 자체가 작업의 일부였다”고 말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쏟아부었지만 그는 여전히 스스로에게 엄격했다.
나 감독은 “영화는 여전히 어려운 작업”이라며 “극장 영화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는 날은 아직도 먼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늘 부족함을 느끼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느낀다”고 말했다.
영화 '호프' 나홍진 감독.(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나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 가장 욕심낸 것은 장르를 늘리는 일이 아니라 장르의 밀도를 극대화하는 일이었다. 액션과 스릴러가 주는 긴장감을 한층 끌어올려 관객이 극장 안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전형적인 한국영화처럼 여러 장르를 혼합하는 방식에서 조금 더 축을 옮기고 싶었다”며 “이전 작품과는 다른 장르적 밀도를 구현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초반 50분 동안 괴물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 구성도 그런 고민의 결과였다”며 “익숙한 장면조차 더 깊이 파고들어 밀도와 완성도를 높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연출 의도는 촬영 방식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숲속 추격 장면에서는 전기 바이크를 활용해 카메라를 이동시키고, 배우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뛰거나 말에 카메라를 장착하는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시도했다. 스마트폰이 없는 시대로 배경을 옮긴 것도 불필요한 설명을 덜어내고 이야기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나 감독은 “관객이 사운드와 비주얼을 통해 영화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며 “그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긴 프리프로덕션과 촬영을 거쳤고, 모두가 오랜 시간 준비한 덕분에 원하는 방향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