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나 마이가 서울 마포구 웨이크원 엔터테인먼트 연습실에서 열린 뉴스1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뉴스1 권현진 기자
이즈나 멤버 마이 © 뉴스1 권현진 기자
"고교 졸업 후 연습생 시작, 도전에 늦은 시기라는 건 없으니까요."
일본에서 100명이 넘게 속한 댄스 동아리 리더로 활동하던 마이는 "K팝 가수에 도전해 보라"는 지인들의 추천과 엠넷 '아이랜드' 시청 후 생긴 무대에 대한 갈망으로 한국에서 연습생을 시작했다. 마이가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후, 한국 나이로는 20살이 넘었던 시기다. 연습생을 시작하기에는 다소 늦은 나이였지만, 마이는 "도전에 늦었다는 건 없다고 생각했고 해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고 말한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마이는 고교 재학 시절 카페, 음식점, 옷 가게 등 다양한 곳에서 아르바이트 경험도 했다. 학업, 아르바이트, 댄스 동아리 활동 등으로 학창 시절을 온전히 보낸 마이는 자신이 겪은 '사회생활'이 힘든 연습생 기간과 외로움을 견디게 해준 무기라고 밝혔다.
실제로 늦깎이 타국 생활과 언어 장벽, 서바이벌 오디션의 압박감 앞에서도 그는 특유의 단단한 긍정주의로 부딪혔다. '이 시기가 지나면 내가 더 성장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갔다는 그다.
고등학생 시절, 엔하이픈을 탄생시킨 엠넷의 '아이랜드'를 보고 K팝 스타에 대한 꿈을 꿨다는 마이는 '아이랜드2'를 통해 지난 2024년 이즈나로 데뷔했다. 마이는 이를 '운명'이라고 정의했다.
가족의 품을 떠나 한국에서 K팝 아이돌로 데뷔한 마이는 오는 9월 모국인 일본에서의 데뷔도 앞뒀다. 새로운 도전을 앞둔 마이를 최근 웨이크원 사옥에서 만났다. 마이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또 다른 토미오카 마이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설렌다"며 웃었다.
이즈나 멤버 마이 © 뉴스1 권현진 기자
-자기소개를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이즈나 마이입니다. 저는 일본 사람이고, 2004년생입니다. 팀에서 맏언니로서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오게 된 계기와 과정이 어떻게 되나요.
▶제가 원래는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가 대학교 진학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댄스 동아리 활동 중 K팝에 관심이 생겼고, 지금 나이에라도 도전하지 않으면 너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고 준비하게 됐습니다.
- K팝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요.
▶그때 일본에서도 K팝이 엄청나게 유행이었고 오디션 프로그램도 많았어요. 한국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일본에서도 인기가 정말 많아서 사람들이 다 보고 있었는데, 저도 친구랑 같이 그때 처음으로 보게 된 프로그램이 '아이랜드'(I-LAND)이었어요. 고등학생 때였죠. 그걸 보면서 '같은 나이대의 사람들이 저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나는 그냥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살고 있는 것 같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도 했어요. 원래 사람들 앞에 서는 무대를 좋아해서 그런 직업을 갖고 싶었지만, 부끄럽고 자신감도 없어서 말을 못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나도 도전하고 싶다'고 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이랜드'를 보고 나서 시즌2인 '아이랜드2'를 통해 데뷔했잖아요. 본인 자신도 정말 신기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처음 웨이크원 연습생으로 들어왔을 때는 '아이랜드'에 대한 얘기가 전혀 없었어요. 그냥 일반 연습생으로 회사에 들어왔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아이랜드'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속으로 정말 운명 같다고 느꼈습니다.
-생각해 보면 연습생 생활을 꽤 늦게 시작한 편이네요. 한국 나이로 성인이 된 스무 살 때부터 시작한 셈인데, 조바심 같은 것은 안 느껴졌나요.
▶느꼈어요. 어떻게 보면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봐도 시간이 아주 늦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도 아이돌을 꿈꾸며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도전에 늦는 것은 없다'라고요. 자기를 믿고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나이라는 이유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으면 좋겠습니다.
이즈나 멤버 마이 © 뉴스1 권현진 기자
-원래부터 꿈이 아이돌이었나요.
원래 꿈은 댄서였어요. 학창 시절에 계속 댄스부로 활동을 했었거든요. 일본은 댄스부가 엄청 유명하고 동아리 문화가 정말 센 편이에요. 그래서 저도 제가 살던 현에서 가장 잘나가는 댄스부에 들어가서 '무조건 전국 1등을 하겠다'는 목표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인기 정말 많았을 것 같아요.
▶아니에요, 전혀요!(웃음) 저보다는 댄스부 자체가 인기가 많았습니다. 부원이 100명이 넘었거든요.
-'아이돌을 직업으로 꼭 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댄스부에서 K팝 커버 무대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반응이 엄청 좋았어요. 비록 학교 안에서의 무대였지만 무대가 끝나고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마이밖에 안 보였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거든요. 그리고 그때 당시에도 오디션이 한창 유행이라 주변에서 저를 소개하고 추천해 주는 친구들이 생겼어요. "네가 지원해 봤으면 좋겠다, 널 소개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그때 많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이게 나한테 맞는 직업일까?' 하는 관심이 생겨서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고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이즈나 멤버 마이 © 뉴스1 권현진 기자
- 원래 꿈이 댄서였던 만큼, 어릴 때부터 남들 앞에 서는 걸 좋아했나요.
▶네,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 서서 저를 보여주는 것을 엄청 좋아했어요. 가족들 앞에서도 재롱부리고 춤추는 걸 아주 좋아했습니다.
-한국어 실력이 출중해요. 늦게 시작했는데도 대단한데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국에 온 스무 살쯤부터 한국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어요. 요즘 아이돌분들이나 연습생분들을 보면 어릴 때부터 한국에서 연습생 생활을 거친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미 성인이 된 상태에서 0부터 다시 시작하려니까 처음엔 그게 참 힘들었어요. 일본어가 너무 익숙한 상태에서 완전히 처음부터 한국어로 대화해야 하고, 제 마음을 한국어로 표현해야 하니까 처음엔 너무 답답했습니다.
-그 답답함을 극복하고 이렇게 단기간에 잘하게 된 비결이 있나요? 어떤 노력을 했나요.
▶대화를 정말 많이 하려고 노력했어요. 제가 소통하고 저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한국어밖에 없으니까요. 실생활에서 부딪히며 대화를 많이 했고, 모르는 단어나 표현이 나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무슨 뜻인지 물어보고 알려달라고 하면서 배웠습니다. 그게 더 빨리 늘 수 있었던 비결인 것 같아요.
-이 정도 수준이 되기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저도 슬럼프가 있었어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속마음의 70~80%밖에 말을 못 하는 것 같아 늘 부족함을 느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꿈도 한국어로 꿔요! 꿈에 한국 사람이 나오면 제가 한국어로 대화하더라고요. 평소에 혼자 생각할 때도 머릿속으로 한국어로 생각할 때가 많아졌어요. (웃음)
이즈나 멤버 마이 © 뉴스1 권현진 기자
-성인이 되어 홀로 타국에 왔는데, 한국 생활을 하면서 외롭거나 슬플 때는 없었나요.
▶처음 한국에 와서 적응하고 익숙해져야 할 때 아는 사람도 없고 친구도 없어서 혼자 다 해야 하니까 조금 외로웠어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이후에는 그렇게 크게 외로움을 느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연습생 기간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역시 '아이랜드2' 방송할 때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어요.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다음 미션을 완벽히 준비해서 테스트받아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누군가는 떨어지고 누군가는 올라가는 서바이벌이었으니까요. 일주일 내내 연습만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어서 압박감이 정말 엄청났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당시에는 그 압박감마저 즐겼던 것 같아요.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절대 해볼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이 과정을 통해 내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그런지, 정작 그 당시에는 힘든 줄 모르고 임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와, 내가 저걸 어떻게 해냈지?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하겠다' 싶어요.(웃음)
-처음에 "엄마, 나 한국 가서 K-POP 아이돌 도전할 거야"라고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 반응은 어떠셨나요.
▶흔쾌히 가보라고 응원해 주셨어요. 살면서 제가 하고 싶다고 한 일에 대해 단 한 번도 "안 돼"라고 반대하신 적이 없어요. 어릴 때는 부모님이 밀어주시는 게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자식이 하고 싶다는 길을 묵묵히 다 믿고 지원해 주신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대단한 일인지 깊이 깨닫게 되더라고요.
이즈나 멤버 마이 © 뉴스1 권현진 기자
-부모님이 마이를 전적으로 믿어주신 이유가 있을까요.
▶ 나중에 어머니께 여쭤봤는데, 어머니도 어릴 때 정말 하고 싶었던 꿈이 있으셨대요. 그런데 집안 형편이나 주변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 딸에게만큼은 그런 아쉬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네 인생이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후회 없이 해봐라' 하는 마음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셨다고 해요. 어머니의 그 마음이 정말 감사해요.
-인생에서 힘든 역경이 찾아올 때마다 어떤 생각으로 이겨내나요.
▶저는 힘든 순간이 오면 오히려 그 힘듦을 즐기려고 노력해요. 최대한 좋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비록 힘들지 몰라도 나중에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닐 거다'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항상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합니다.
<【물 건너온 아이돌】 이즈나 마이 편②에 계속>
hmh1@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