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능한 사랑'을 연출한 이창동 감독.(사진=로이터)
하지만 영화는 곧 멈춰 섰다. 실제 노동자들의 삶과 고통을 충실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가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이를 다시 극영화로 재현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도 당시를 돌아보며 “내가 이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고 밝혔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한 그는 프로젝트를 접었다. 영화로 만들기 위해 시작한 이야기는 그렇게 오랜 시간 ‘서랍 속 작품’으로 남았다.
변화의 계기는 오정미 작가였다. 영화 ‘버닝’에서 이 감독과 함께 각본을 쓴 오 작가는 기존 해고 노동자 이야기만 따라가는 대신, 이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다큐멘터리 감독의 이야기를 함께 가져가자고 제안했다.
이 아이디어는 작품의 방향을 바꿨다. 노동투쟁을 직접 재현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행위 자체를 영화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누군가의 상처를 예술이 어디까지 다룰 수 있는지, 타인의 삶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에게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를 함께 묻게 됐다.
결국 ‘가능한 사랑’은 처음 구상했던 노동영화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확장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감독 역시 베니스영화제 공식 소개를 통해 해당 사건을 극영화로 만드는 것이 옳은지 오랫동안 고민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작품 완성에 긴 시간이 걸린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한때 포기했던 이야기는 결국 가장 오래 고민한 질문을 품은 채 돌아왔다. 10년 넘게 묵혀 있던 ‘서랍 속 영화’가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호평까지 받은 과정은 ‘가능한 사랑’이라는 작품 자체만큼이나 이창동 감독다운 선택의 궤적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