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대형 공연장의 ‘허리’가 동시에 막히면서 공연계가 대체 공연장을 찾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잠실실내체육관이 지난달 21일부로 운영을 중단한 데 이어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티켓링크 라이브 아레나)마저 인근 개표소 봉쇄 시위 장기화 여파로 이용에 차질을 빚으면서다. 내년 7월 서울아레나가 가동하기까지 약 39주간 공연계에는 혹독한 ‘대관 보릿고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경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밴드 콜드플레이의 내한 공연.(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2일 공연계에 따르면 잠실실내체육관과 핸드볼경기장의 공백은 내년 7월 서울아레나 개장 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이데일리가 두 공연장이 매주 금·토·일요일 사흘씩 공연을 연다고 가정해 분석한 결과 39주간 최대 234회의 공연 기회가 사라진다. 공연 시 활용 객석을 잠실 6000석, 핸드볼경기장 5000석으로 보수적으로 잡아도 최소 129만석이 증발한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5000석 이상 공연장에서 열린 대중음악 공연은 542회, 월평균 약 45회였다. 두 공연장에서 줄어드는 최대 234회를 월평균으로 환산하면 약 26회로, 지난해 월평균 5000석 이상 공연회차의 절반을 웃돈다.
올해만 케이스포돔 등 중대형 공연장에 처음 입성했거나 입성을 앞둔 국내외 아티스트가 10팀을 훌쩍 넘는다. 아티스트의 공연 규모가 커지면서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대중음악 티켓판매액은 9817억원으로 1조원에 육박했고 올 상반기에도 약 4527억원을 기록했다.
문제는 공연 수요가 커지는 속도를 인프라 확충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7월 서울아레나가 문을 열면 2만8000석 규모 메인 공연장과 약 7000석 규모 중형 공연장이 새로 공급되지만 그전까지 공백을 메울 뾰족한 대안은 없다.
공연계 관계자는 “지금의 대관난은 인기 공연장 몇 곳을 잡기 어려운 수준을 넘어섰다”며 “공연할 아티스트와 관객은 늘었는데 이를 받아낼 공간과 조건이 따라오지 못하면서 공연 자체가 막히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겨울 밀린 공연 수요가 내년으로 넘어가면 대관난이 더 누적될 수 있다”며 “이제는 공연장 부족을 산업 인프라의 병목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챗gpt 생성 이미지)
서울을 벗어나 수도권까지 범위를 넓히면 숫자상 선택지는 적지 않다.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에 따르면 5000명 이상 수용 가능한 공연 시설은 서울 19곳, 경기 48곳, 인천 12곳 등 모두 79곳이다. 그러나 실내시설로 좁히면 23곳에 그친다. 이 가운데 12곳은 프로스포츠 홈구장으로 쓰여 경기 일정의 영향을 받고, 나머지에도 대학 체육관과 민간시설, 컨벤션센터 등이 포함돼 있다. 겨울철 야외시설까지 제외하면 제작사가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공연장은 숫자보다 훨씬 적어진다.
서울 공연장을 구하지 못해 수도권 대관을 알아보는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겨울 공연이라 야외 경기장은 처음부터 제외하고 본다”며 “실내도 1만 명을 수용한다고 해서 그만큼 티켓을 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대와 장비를 설치하면 판매 가능한 좌석이 절반 수준까지 줄어드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비용까지 따지면 선택지는 더 좁아진다. 케이스포돔과 핸드볼경기장은 유료 관람권 액면가 총액의 6%를 관람권수수료로 받고, 고척스카이돔과 서울월드컵경기장은 문화예술행사에 관람수입의 8%를 적용한다. 반면 서울 밖 주요 공공 체육시설은 10% 수준을 적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안산은 관람권 수입총액의 10%, 부천·성남은 문화예술행사에 10%, 인천 시립체육시설도 6000석 이상 문화·공연행사에 10%를 받는다.
서울 밖 일부 시설은 관객 접근성과 모객 부담이 더 큰 데다 운송·설치비도 늘어나는데, 매출 연동 사용료마저 높아 수지타산을 맞추기 쉽지 않다. 고양시가 2024년 대형 공연 유치를 위해 고양종합운동장의 사용료 비율을 10%에서 6%로 낮춘 것도 제작사 부담을 덜어주고 공연 유인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개표소 봉쇄 시위 장기화 여파로 셧다운 상태인 올림픽 핸드볼경기장(티켓링크 라이브 아레나) 정문 모습.
업계에서는 지자체 조례상 사용료를 당장 낮추기 어렵다면 중앙정부가 대관료와 장비 임차료 등 실제 공연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본다. 고기호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 회장은 “새 공연장을 계속 짓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이미 있는 경기장과 체육관에서 실제 공연이 열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기존 시설의 공연 활용도를 높이는 작업에 나섰다. 올해 120억원을 들여 전국 6개 권역 체육·다목적시설의 공연 설비를 개선하고 있으며 수도권에서는 고양종합운동장이 대상에 포함됐다. 가변형 좌석과 음향 등 공연 인프라를 보강해 대중음악 공연 수용력을 높이는 사업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시설 개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실제 공연을 성사시키는 비용까지 살펴야 한다고 주문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 같은 방식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도쿄다. 도쿄도 산하 아츠카운슬 도쿄는 ‘도쿄 라이브·스테이지 지원’을 통해 클래식뿐 아니라 팝 음악을 포함한 라이브 공연 제작비의 최대 절반을 지원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연장 숫자가 아니라 제작사가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무대가 얼마나 되느냐다. 고 회장은 “K팝 시장이 커지는 만큼 공연 인프라도 산업의 성장 속도에 맞춰야 한다”며 “지역에서 공연이 꾸준히 열리면 관객 유입과 소비가 뒤따르고 그 공간 자체가 다음 공연을 불러오는 힘도 생긴다. 기존 시설을 어떻게 공연시장과 연결할지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