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할게"…김혜자, '여전히 찬란하게' 새긴 열연 [시네마 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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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2026년 October 16일, PM 04:13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 스틸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기억할게."

오랜 세월이 흘러도 기억에서 놓을 수 없는 친구가 있다.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는 1942년과 1991년을 오가며 두 소녀의 우정과 그중 한 사람을 평생 기억해 온 이의 시간을 그린다. 일제강점기의 비극이 앗아간 한 소녀의 삶과 그 기억을 어떻게 남길 것인지에 집중한다. 김혜자의 연기는 이 이야기에 깊이를 더한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여전히 찬란하게'는 내 생애 가장 찬란한 순간을 함께한 단짝 친구 정임(차미경 분)을 60년 만에 다시 만난 순옥(김혜자 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단편 영화 '소풍'(1999)으로 칸 국제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 심사위원대상을 받고 '거미숲'(2004) '오직 그대만'(2011) 등 영화를 선보인 송일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 스틸

영화는 1942년 열일곱 살 정임(최주은 분)과 순옥(박서경 분)의 모습에서 출발한다. 두 사람은 팔에 같은 증표를 남기며 "항시 함께"라고 약속할 만큼 깊은 우정을 나누는 친구 사이다. 노래를 좋아하는 정임은 순옥과 함께 서울로 가 꿈을 펼칠 날을 기대한다. 하지만 일제 징용의 위협이 마을까지 번지고, 결국 두 소녀는 두영(문성현 분)의 도움을 받아 몸을 숨긴다.

시간이 흘러 1991년의 순옥은 할머니가 됐다. 영화는 어린 시절의 두 친구와 노년의 순옥과 정임을 오가며 지나간 시간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순옥은 정임을 곱게 꾸며주며 함께 '국민가요마당'에 나갈 생각에 들뜬다. 꿈을 나눴던 그 시절처럼 설레면서도 애틋해한다. 그 과정에서 순옥이 오랜 세월 안고 살아온 정임을 향한 미안함과 죄책감도 드러난다.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 스틸

'여전히 찬란하게'가 힘을 얻는 지점은 기억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순옥에게 정임은 여전히 열일곱 살, 꿈 많던 소녀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자신까지 떠나면 친구를 기억해 줄 사람이 없다는 순옥의 말에는 정임을 평생 잊지 않고 가슴에 간직해 온 이유가 묻어난다. 누군가에게 이름이 기억되는 것이 아픈 역사의 위로가 된다고 생각했다는 송일곤 감독의 연출 의도와도 맞닿는다.

김혜자는 노년의 순옥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열연과 존재감을 보여준다. 송일곤 감독은 "집 앞 이름 모를 들꽃처럼 살고 싶다"며 활동을 쉬던 김혜자를 9년 만에 스크린으로 불러들였다. 배우가 캐스팅 제안을 스스로 납득할 '명분'을 제시하면서 출연이 성사됐던 만큼, 영화를 보고 나면 김혜자가 아닌 순옥을 떠올리기 어렵다. 김혜자는 친구를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눈빛과 표정,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담는다. 감정을 크게 밀어붙이지 않으면서도 노년의 순옥이 견뎌온 시간을 설득한다.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 스틸

다만 정임의 꿈을 시각화한 뮤지컬 시퀀스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노래와 무대를 꿈꾸는 정임의 마음을 보여주는 장치이고 최주은의 가창과 뮤지컬 연기도 눈에 띈다. 하지만 영화의 오프닝과 후반부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극의 결에서 다소 튄다는 인상을 준다. 정임의 꿈과 내면을 강조하려는 의도는 분명하지만, 표현의 강도가 높아 앞뒤 장면과 매끄럽게 맞물리지는 않는다.

'여전히 찬란하게'는 한 개인의 기억을 통해 역사의 비극과 현재를 연결한다. 그리고 순옥이 홀로 품어온 정임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가 받아들이는 데까지 나아간다. 결국 영화가 남기는 것은 역사 속에서 사라질 수 있었던 한 사람의 이름과 삶을 기억하겠다는 마음이다. 김혜자의 절절하면서도 절제된 연기가 그 메시지를 가장 선명하게 전달한다. 상영 시간 118분.

aluem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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