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첫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거장항준'은 장항준 감독의 자전영화에 출연할 배우를 캐스팅한다는 콘셉트의 토크를 펼쳤다. 장항준을 필두로 송은이, 김풍 등 어디 가서 입담으로 뒤지지 않는 출연진이 뭉쳤다.
이 프로그램 탄생 배경에는 장항준이 연출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가 있다. '왕사남'은 약 1,690만 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제62회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주연 배우 유해진이 영화 부문 대상을 거머쥐었고, 제46회 황금촬영상에서는 작품상과 감독상을 휩쓸었다. 감독보다 예능인으로 더 주목받기도 했던 장항준이 영화계에서도 존재감을 입증하며 '거장'이란 타이틀을 달았다.
방송 전 공개된 티저부터 반응은 뜨거웠다. '장항준을 위한 트루먼쇼' '고퀄리티 조롱' 등 기대 섞인 반응이 쏟아졌다. 예상대로 조롱인 듯 조롱 아닌 장항준 띄워주기로 시작했지만, 그 끝엔 힐링이 있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오로지 장항준만을 위해 모였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첫 번째 관전 포인트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봉준호와 박찬욱은 장항준을 향한 극찬을 쏟아낸다. 톱스타들은 "한 번만 영화에 출연하게 해 달라"며 애원하고, 오디션을 보러 '거장항준'에 온 배우들은 갖가지 선물까지 바치며 아부에 열을 올린다. 과장된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즐기는 장항준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실소를 터뜨린다.
두 번째 관전 포인트는 역시 출연진의 입담이다. 세 사람의 티키타카는 자칫 뻔해질 수 있는 토크쇼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야기가 진지해질 때쯤 장항준의 거침없는 농담이 분위기를 잡는다. 그가 배우의 캐스팅 비화를 듣고는 "돈을 찔러준 것 아니냐"고 막말하자 송은이는 "항시 말조심"이라고 브레이크를 걸며 적절하게 받아친다. 김풍은 중간중간 양념을 치듯 대화에 끼어들어 웃음을 보태고, 다음 주제로 이끌어가는 발판을 마련한다. 오랜 친분에서 비롯된 셋의 조합은 시청자가 '방방봐'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마지막 관전 포인트는 장항준 본인이 아닌, 배우의 삶을 비춰준 것이다. 자신의 자전영화 제작을 명목으로 배우를 불러 모았지만, 정작 대화의 중심에는 그들의 인생이 놓인다. 직접 프로필을 돌리며 광고주들을 찾아다녔던 무명 시절부터 여기저기서 캐스팅 제안을 받는 현재까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가려졌던 고민과 외로움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때 장항준은 예능인보다 감독에 가깝다. 게스트의 진지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눈빛과 진심 어린 반응은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낸다. 배우라는 직업이 지닌 고충과 외로움을 이해하고 다독이는 순간에는 장난기도 잠시 내려놓는다. 장항준이 차기작이라며 내놓은 '여왕과 사는 남자'의 황당한 대본을 배우들이 완벽하게 소화하자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우스꽝스러운 설정 속에서도 배우의 연기력을 끌어내는 모습은 그가 감독임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다만 이 콘셉트가 지루해지지 않도록 계속 변주를 주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동원 PD는 앞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도 연출했다. 방송 초반 독특한 콘셉트로 인기몰이를 했지만, 이제는 익숙한 포맷이 됐다. '거장항준' 또한 처음에는 웃음을 주지만, 콘셉트가 반복될수록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힐링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유재석의 유튜브 콘텐츠 '핑계고'는 한 시간 넘는 토크만으로 채널 오픈 4년 만에 구독자 338만 명을 모았다. 토크 기반 롱폼(long-form)이 다시 주목받는 가운데, 장항준을 중심으로 이야기꾼들을 모은 '거장항준'도 성공적으로 첫발을 뗐다. 앞으로도 유쾌함과 진정성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한다면 시즌2를 기대해 볼 만하다.
iMBC연예 신지아 | 사진출처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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