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낙원' '군체' 스틸 컷
지난 21일 개봉한 '실낙원'은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 류소영(김현주 분)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류선우(배현성 분)가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심리 스릴러다. 배우 김현주와 배현성이 주연을 맡은 이번 영화는 연상호 감독이 '얼굴'(2025)에 이어 다시 한 번 만든 저예산 영화라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제작에 들어간 순제작비는 5억 원 정도다. 개봉 전 해외 118개국에 판매되며 순제작비를 모두 회수했다. 연상호 감독은 자본이 주는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실험적 시도를 할 수 있는 저예산 영화 제작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낙원'에서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부분은 영화가 선택한 소재와 주제에 있다. 어린 시절 납치를 당해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한 아들이 기억 속 아들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이런 질문과 함께 '실낙원'에는 근래 가장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인 'AI'가 이식돼 높은 시의성을 자랑한다.
영화 속에서 AI는 어둡고 복잡한 인간의 세계와 대조되는 밝고 밋밋한 '낙원'에 비유된다. '실낙원'에서 류소영은 스쿨 버스 납치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뒤 어느 AI 개발 회사가 당시 사건으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을 위해 만든 AI 프로그램 '낙원의 아이들'에서 아들 선우와 재회한다. '낙원의 아이들'에 사는 선우는 선우의 기억들을 통해 구성한 가상의 선우다.
연상호 감독은 영화 속 AI 아들 선우가 사는, '낙원'과 같은 가상의 공간을 "사색이 없는 공간"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는 "사색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모든 것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행복이나 고통, 잔인함 같은 것들도 사색이 시작되면서 생겨났다고 생각한다"면서 "낙원이라는 것도 사색이 존재하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일주일이 지나면 더 이상 좋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사색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낙원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사색 없음'은 영화가 보여주는 'AI 선우'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삶의 굴절로 인해 과거와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버린 진짜 선우의 어두운 모습과 달리, 'AI 선우'는 프로그램 안에 저장된 선우의 기억을 바탕으로 끝없이 류소영에게 긍적적인 반응을 해준다. 그리고 류소영은 그런 '완벽한' 선우에게 애착을 보이는 듯 하며, 거기서 오는 딜레마로 고뇌한다.
AI 시대에 대한 연상호 감독의 통찰이 드러나는 영화는 '실낙원' 뿐만이 아니다. 좀비 영화인 '군체'에서도 연 감독은 AI 시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군체'는 본격적인 상업 영화였던 만큼, 간접적이고 은유적인 방식이 돋보였다. 영화는 정체불명의 감염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에 맞서 벌이는 사투를 그린 작품. 극 중 좀비들은 특정한 분비물을 통해 개미들처럼 소통하는 '집단 지성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연상호 감독에 따르면 좀비들의 이 집단 지성 능력은 AI 시대의 집단 지성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발상이다. 연 감독은 "AI 알고리즘은 쉽게 얘기하면 보편적인 사고의 총합 같은 느낌이다, 개별성에서 올 수 있는 소수의견은 인간만의 특성이다, 인공지능은 보편적인 사고의 총합이라서 소수의견을 낼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옥'을 작업할때 느꼈던 '우리 사회가 가는 방향성이 뭐가 문제일까'에 대해 해답이 생겼다"고 밝힌 바 있다.
AI에 대한 연 감독의 고민은, 그가 기존 작품에서 보여줬던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대한 고민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연 감독의 작품들은 '획일화되고 이기적인 집단 안에서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늘 품고 있었고, '실낙원'과 '군체' 모두 이런 고민과 연결되는 작품이다. 연상호 감독은 "AI라는 것은 집단성이 하나로 귀결된 응집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AI를 빼놓고 생각하기가 힘들다, 모든 것이 AI라는 응집체로 귀결되는 느낌이 든다"며 집단과 개인에 대한 고민이 최근 들어 AI에 대한 통찰로 이어져왔다고 설명했다.
eujenej@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