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나다운 작품"…김혜옥의 세월 담긴 '흐르는 여정'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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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6년 November 01일, AM 09:51

[이데일리 최희재 기자] “내가 살아온 과거와 환경, 경험까지 춘희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어요. 뭔가를 일부러 하지 않아도 저절로 하게 됐죠.”

김혜옥(사진=영화사 진진)
김혜옥(사진=영화사 진진)
배우 김혜옥은 영화 ‘흐르는 여정’(감독 김진유) 개봉을 앞두고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살아온 세월과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든 인물이었기에, 애써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제목처럼 ‘흐르듯이’ 이 작품 속 춘희가 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흐르는 여정’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자신만의 여행을 준비하던 춘희(김혜옥 분)가 새로 이사 간 아파트에서 예상치 못한 인연들을 만나며 고요했던 일상에 새로운 선율이 흐르기 시작하는 이야기다.

한 차례 출연을 고사했던 김혜옥은 ‘흐르는 여정’을 두고 “가장 나다운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작품을 선택한 이유 역시 자신과 닮은 인물이라는 데 있었다. 그는 “저는 춘희랑 성격도 닮았다. 섬세하지 못하고 된장찌개도 못 끓인다”며 “연극만 하고 운이 좋았다”고 웃었다.

영화 '흐르는 여정' 스틸(사진=영화사 진진)
영화 '흐르는 여정' 스틸(사진=영화사 진진)
김혜옥에게 ‘흐르는 여정’은 단순히 한 인물의 이야기를 연기한 작품이 아니다. 그는 이 영화를 “저에게는 추모의 영화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추모”라고 정의했다.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진 그는 “전 원래 욕심이 없는 편인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직접 부르진 못해도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나이 정도 되면 떠나간 분들이 많다. 그런 슬픔들은 연습이 안 된다. 뭉뚱그려서 내 마음에 제(祭)를 지내는 것 같은 느낌”이라며 “마음 속 기쁨과 슬픔, 후회 이런 것들을 담아서 연기했다”고 전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김진유 감독과 이견도 있었다. 김혜옥은 “차 안에 있는 장면에선 펑펑 울고 싶었다. 감독님한테 반항도 해봤는데, 감독님은 태클 주는 연출자”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러면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감독님이 못 울게 해서 못 울었을 뿐이지”라고 덧붙였다.

김혜옥(사진=영화사 진진)
김혜옥(사진=영화사 진진)
그가 작품에 쏟은 감정은 촬영 현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김혜옥은 “매 신마다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절절하게 생각하고 보고 싶어했다. 시간 날 때마다 바닷가를 걸었다”며 “15층에서 깜깜한 바깥을 바라보며 몰래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에게 위로가 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김혜옥이 인터뷰를 한다는 소식에 김진유 감독이 직접 들르기도 했다. 김혜옥은 김 감독과 인사한 뒤 “엄마 같아”라고 덧붙여 웃음을 안겼다.

사실 한국 사람이라면 김혜옥은 모를 수가 없는 배우다. 그래서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흐르는 여정’을 보고 그 생각이 깨졌다. 김혜옥의 얼굴을 이렇게 오래 자세히 바라봤던 적이 있던가. 그 자체만으로 벅찼다.

김혜옥에게도 이번 작품의 의미는 남다르다. 그는 “예전에는 조화를 생각하기 보다는 내 것을 위주로 고뇌했는데, 지금은 한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여유는 아니다. 지금도 긴장하면서 연기하는데, 관점이 달라진 거다”라고 전했다.

이어 “나중에는 내 연기를 잊어버리고 작품에 빠져서 객관적으로 보게 되더라”라며 “저스틴과 대호와의 장면을 보면 너무 흐뭇하고 따뜻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감독) 이 양반이 잘 만드는구나 싶었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영화 '흐르는 여정' 스틸(사진=영화사 진진)
영화 '흐르는 여정' 스틸(사진=영화사 진진)
김혜옥은 함께 호흡을 맞춘 민준 역의 저스틴 민, 성찬 역의 박대호를 언급할 때마다 극 중 춘희를 떠올리게 하는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저스틴 민에 대해서는 “연기를 논리적으로 하는 친구”라고 평가했다. 그는 “막걸리를 마시거나 약간 움직이는 것까지 계산하는 것 같았는데, 그런 디테일에 깜짝 놀랐다”며 “자기 색깔도 강하고 잘하는 배우다. 도움을 청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만 조언해줬다. 춘희와 민준으로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칭찬했다.

이번 작품으로 연기에 도전한 연주자 박대호를 향해서도 아낌없는 애정을 보냈다. 그는 “첫 연기니까 걸음마도 못하는 단계인데, 정말 깜짝 놀랐다. 연기는 느낌도 중요하지만 기술도 중요한데 하나를 알려주면 100을 해냈다”고 말했다.

47년 차 연기자 김혜옥은 “역경을 딛고 장애를 딛고 열심히 살아가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다”고 했다.

김혜옥(사진=영화사 진진)
김혜옥(사진=영화사 진진)
마지막으로 김혜옥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여러 가지 이별을 해봤잖아요. ‘천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가 있어요. 나는 죽은 게 아니라 바람이 되고 물이 되고 바다가 됐으니 슬퍼하지 말라는 노래예요. 아픔을 겪을 때마다 차 안에 틀어놓고 혼자 울곤 했는데, (작품 속 춘희와 겹쳐) 기가 막히지요. 춘희는 남아있는 이들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곁에 있다고, 사라진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걸 느꼈거든요. 떠나간 분들이 어디 멀리 간 것 같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나를 도와주고 보살펴주는 것 같은 느낌이요. 끝나고 나서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얘, 슬퍼하고 외로워하지 마. 춘희의 자리에 우리가 있어.’ 이걸 알려주려고 이런 영화가 나한테 왔나보다.”

‘흐르는 여정’은 지난달 28일 개봉했다.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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