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몽', 90년대 TV서 日 극우 때린 자이니치…신숙옥의 승리 [시네마 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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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2026년 November 04일, PM 06:38

'호루몽' 스틸 컷

'호루몽'은 곱창을 뜻하는 일본어 호루몬(ホルモン)에서 유래한 제목이다. 일본에서 곱창은 해방 이후 재일 한국인들이 처음 먹기 시작한 음식으로 알려졌다. 호루몬의 어원은 '버리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호루모노(放るもの)인데, 이를 통해 '버리는 것'을 먹고 살 수밖에 없었던 재일 한국인들의 쉽지 않았던 삶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호루몽'의 주인공 신숙옥은 제목에 붙은 '몽'을 꿈이라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다며 '꿈을 버리지 말라'는 역설적이면서도 이중적인 주제를 덧붙여 의미를 완성했다.

재일 한국인 인권운동가 신숙옥 유튜브에 떠도는 한 영상으로 국내에서는 한 차례 얼굴을 알렸던 인물이다. 90년대 후반 일본의 한 방송에서 진행한 위안부 관련 토론에서 극우 패널의 말문을 막는 젊은 재일 한국인 3세 여성의 패기는 누리꾼들로부터 "존경스럽다" "자랑스러운 한국인" "멋지다" 등의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영화 '호루몽'은 30년 뒤, 영상의 주인공이었던 신숙옥 씨가 살아가는 멋지고 뜨거운 투쟁의 삶을 보여주며 여전히 일본 내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재일 한국인의 삶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

영화는 신옥숙 씨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다. 현재의 신옥숙 씨는 인권운동가로 일본 내 약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반대 운동에 앞장서고, 지진으로 재난 피해를 본 지역을 돌아다니며 피해를 본 재일 한국인들을 찾아 음식을 전하고 위로와 격려를 하기도 한다. 그런 그는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약 6년간 일본의 지상파 민영 방송국 TOKYO MX와 제작사 DHC 텔레비전 등을 상대로 법적 소송 등 다툼을 이어왔다.

'호루몽' 스틸 컷


발단은 2017년 방송된 '뉴스여자'라는 프로그램이었다. 해당 방송은 신숙옥과 그가 몸담은 시민단체 노리코에넷의 활동을 다루면서 신숙옥을 북한의 지령을 받아 일본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인물이라는 취지로 묘사했다. 이후 신숙옥은 일본 극우 세력의 공격 대상이 됐고, 살해 협박과 스토킹, 온라인 비방 등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그로 인해 그는 같은 해 11월 일본을 떠나 독일에 머무르기도 했으나, 약 1년 만에 다시 돌아와 '뉴스 여자' 제작사 DHC 텔레비전과 진행자 하세가와 유키히로를 상대로 명예훼손 및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주요 사건이 된 이 소송과 함께, '호루몽'은 재일 한국인 1세대인 신숙옥의 외할머니 이백란, 2세대인 어머니 케이코가 살았던 삶을 3세대인 신숙옥의 삶과 연결해 이야기의 또 다른 축으로 삼았다. 조선인 학살이 자행된 관동 대지진 시절을 겪은 외할머니는 북한의 북송 사업으로 남편과 아들을 북한에 보냈다. 어머니 케이코는 어린 시절 꿈 많은 소녀였지만, 차별의 벽에 부딪혀 평생을 혼란과 고뇌 속에 살다 일본인으로 귀화한 뒤에야 삶의 여유를 가까스로 찾았다. 어린 시절부터 '조센징'인 것을 특별하다 여겼던 신숙옥은 당찬 성격 탓에 일본인 선생님으로부터 "넌 불량배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이니치'(재일 한국인) 소녀가 취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신숙옥은 연예인 프로듀서에게 "천만엔에 누가 나를 사줬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할 정도로 절실했다. 결국 프로듀서의 도움으로 그는 모델 일을 시작해 돈을 벌게 된 그는 기업 대상 컨설팅 회사를 차려 20~30대 성공적인 커리어를 일궜다. 하지만 1999년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한 TV 아사히의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름을 알리고, 2000년 이시하라 신타로 당시 도쿄도지사의 '삼국인' 발언에 반박하는 반차별 운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인권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호루몽'은 신숙옥이라는 투쟁적인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풀어내며, 사실상 '2등 국민'으로서 억압과 차별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재일 한국인들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하지만 비참한 삶을 단순히 조명하는 데서 끝내지 않는다. 평생을 걸쳐 투쟁해 온 신숙옥이 결국 DHC 텔레비전을 상대로 한 법적 소송에서 끝내 승리해 550만 엔의 배상 판결을 받아내는 것을 보여주며 투쟁과 연대를 통해 끝내 쟁취하게 되는 '승리'의 서사를 완성한다. 신숙옥이라는 강력한 한 인물의 존재감만으로도 이야기는 흡인력이 높다. 혐오 시위에 맞선 반차별 운동을 조명한 '카운터스', 드랙 아티스트 모지민의 삶과 퍼포먼스를 담은 '모어'를 연출한 이일하 감독이 감각적인 연출로 몰입을 견인한다. 상영 시간은 100분이다. 오는 11일 개봉.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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