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일희가 9일(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주에서 열린 LPGA 투어 숍라이트 클래식 최종일 18번홀 그린에 올라서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AFPBBNews)
1988년생인 이일희는 박인비, 신지애 등과 동갑내기다. 2010년 LPGA 투어에 데뷔해 ‘세리키즈’로 주목받았다. 2013년 5월엔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 첫 승도 올렸다. 그러나 2018년을 끝으로 시드를 잃었고, 그 뒤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대회 출전 기회를 점점 줄어 1년에 10개 대회도 뛰지 못했다.
올해도 지난주 US여자오픈은 예선을 통과해 출전을 획득했고, 이번 대회에서 두 번째 출전했다. 1라운드에서 8언더파 63타를 쳐 공동 선두에 오른 이일희는 2라운드에서 3타를 더 줄여 1타 차 단독 1위가 돼 12년 만에 우승의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크게 들뜨지 않았다.
2라운드 뒤 이일희는 “그냥 골프를 했고, 코스에서 즐기려고 했다. 전반에 버디가 많이 나와 즐거웠고 행복했다”며 “이제야 골프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게 됐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골프를 즐긴다. 우승한다면 멋지겠지만, 그건 통제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했다.
4396일을 기다린 우승의 꿈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딱 1타가 모자랐다. 그러나 경기 중반 10위 밖으로 밀렸다가 후반에 버디 6개를 잡아내며 끝까지 우승 경쟁을 펼치는 뒷심이 돋보였다. 경기가 끝난 뒤 이일희는 “컵초의 경기를 보는 게 무척 즐거웠다. 정말로 그를 응원했다”면서 “이건 그냥 골프일 뿐이고,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그의 경기를 지켜보는 건 정말 멋진 일이었다”고 축하 인사를 전했다.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지는 못했으나 이일희의 경기는 큰 감동을 줬다. 동료들의 축하와 응원도 이어졌다. 이일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를 정말 많이 받았다”며 “가장 친한 친구인 (신)지애도 메시지를 보내서 ‘네가 나한테 영감을 줬어’라고 했다. 제가 원하는 건 모든 사람이 골프를 즐기는 것이다. 그게 전부”라고 언급했다. 이일희는 투어에서 돈을 벌지 못하는 동안 레슨을 하면서 주니어 선수를 지도했다.
우승은 못했지만 값진 성과도 있었다. 2014년 토토 재팬 클래식 준우승 이후 11년 만의 최고 성적이자, 2016년 레인루드 클래식 이후 첫 톱10이다. 무엇보다 내년 시드 유지의 기준과 남은 시즌 대회 출전 자격을 따지는 CME 글로브 포인트 320점을 획득해 47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일희가 시즌 종료 때까지 상위 80위 안에 들면 내년 풀시드를 받는다. 올 시즌은 포인트 순위 자격으로 남은 대회에도 나갈 수 있다. 상금도 16만 4136달러를 획득했다. 2023년 9개 대회에 출전해 1만 9164달러를 획득했으니, 8.5배나 더 벌었다.
한편 컵초는 2022년 셰브론 챔피언십 이후 약 3년 만에 통산 4승째를 따냈다. 우승 상금은 26만2500달러(약 3억6000만 원)다. 김세영은 이날만 6타를 줄이며 최종 합계 12언더파 201타를 기록, 3위에 올랐다. 임진희는 사이고 마오, 야마시타 미유(이상 일본) 등과 공동 5위(10언더파 203타)에 올라 모처럼 한국 선수 3명이 톱10에 들었다.
세계랭킹 1위 넬리 코다(미국)는 공동 15위(8언더파 205타), 박성현은 공동 29위(5언더파 208타), 고진영은 공동 58위(1언더파 212타)로 대회를 마쳤다.

이일희가 18번홀 그린으로 이동하는 동안 팬들의 응원에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AFPBB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