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과 폭력의 가위바위보: 스포츠는 졌다[스포츠리터치]

스포츠

이데일리,

2025년 11월 18일, 오전 10:52

이데일리가 대한민국 스포츠의 미래를 고민합니다. 젊고 유망한 연구자들이 현장의 문제를 날카롭게 진단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합니다. 변화의 목소리가 만드는 스포츠의 밝은 내일을 칼럼에서 만나보세요.[편집자 주]
지난 8월 강원 양구군 문화체육관에서 열린 2025 한국중고농구 주말리그 왕중왕전 준결승전에서 한 선수가 상대편 중학교의 선수를 주먹으로 가격하는 일이 발생했다. /유튜브 ‘농야모’
[정현 칼럼니스트] 스포츠는 본디 인간을 성장시키는 교육의 장이어야 한다. 협동, 자기 절제, 타인 존중이라는 기본 덕목은 경기 규칙과 훈련 속에서 몸에 새겨져야 한다. 그러나 최근 중·고 농구 경기 중 발생한 폭력 행위는 이런 교육적 이상이 얼마나 쉽게 성취 지상주의에 가려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문제가 된 선수는 경기 진행 도중 단순 실수나 일시적 분노를 넘어, 해서는 안 될 행동을 저질렀다. 이는 사건의 선후 관계를 떠나, 스포츠가 본래 지닌 안전판 기능-규칙, 윤리, 스포츠맨십-을 무너뜨리고, 오직 자기 성취와 순간적 우위를 위해 상대를 폭력으로 제압하려 한 것이다.

이처럼 승부의 결과만이 강조되는 구조 속에서 해당 선수는 스포츠 정신을 배우지 못하고 폭력을 ‘경기의 연장선’처럼 사용한 것이다. 지도자와 협회, 학부모 역시 그릇된 결과와 성과에 취해 본질을 외면했다.

결과적으로 ‘콩을 심었으니 콩이 난 것’처럼, 폭력적 성취가 구조적으로 양산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한 개인의 일탈을 목격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스포츠 교육이 빚어낸 사회적 산물을 보고 있다.

이미지=퍼플렉시티 AI
고개 숙인 최소한의 약속: 사라진 선수 윤리와 미숙한 운영제도

폭행 가해 선수 및 지도자에 대한 영구 제명, 장기 자격 정지와 같은 징계는 단호해 보인다. 하지만 결국 사건 발생 이후의 사후 처방에 불과하다. 정작 폭행이 일어난 순간, 심판은 경기의 질서를 지켜내지 못했고, 협회는 예방 장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선수 윤리 교육은 형식적이었고, 지도자와 운영진은 감정 통제와 책임의식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했다.

스포츠의 기본 약속이라 할 ‘페어플레이’와 ‘스포츠맨십’은 이미 오래전부터 형식적 가치로 전락했다. 결과만 중시하는 풍토 속에서 선수와 지도자 모두 최소한의 약속을 쉽게 저버린다. 운영 주체 역시 위기 대응은 늦고, 관리 체계는 허술하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경기장 내 폭력이 아니라, 제도의 허술함이 구조적으로 빚어낸 ‘관리 실패’의 결과다.

이미지=퍼플렉시티 AI
협회와 대중사회에 대한 우려의 시선

스포츠는 승패를 가르는 경쟁의 장이자 동시에 인간을 길러내는 학교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일탈과 폭력은 이 약속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협회는 더 이상 땜질식 징계로 사건을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윤리 교육을 강화하고, 경기 운영과 지도자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또한 대중사회 역시 단순히 ‘성과’와 ‘메달’에 환호하는 소비자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선수와 협회가 진정으로 지켜야 할 가치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감시자이자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의 농구장에서 벌어진 폭력은 내일 또 다른 경기장에서 재현될 것이며, 스포츠는 교육적 가치를 잃은 채 또 한 번 ‘졌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단지 한 선수의 일탈이 아니다. 이는 협회의 무능과 제도의 허술함, 그리고 성과만 숭배하는 일부 대중의 무책임이 빚어낸 합작이다. 폭력이 승리하는 순간, 스포츠는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만약 협회와 사회가 지금 이러한 잦은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한국 스포츠는 더 이상 교육의 장도, 공정한 경쟁의 무대도 될 수 없다. 이제는 뿌리부터 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스포츠는 다시, 그리고 영원히 질 것이다.

개선은 미래의 계획이 아니라 지금의 실천이 먼저다.

▲ 더 스파크(The SPARC)는 스포츠 정책 연구를 위해 모인 신진 연구자 그룹입니다. 젊은 연구자들이 모여 스포츠와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탐구하며, 새로운 정책 대안을 모색합니다. 이 그룹은 학문적 연구와 현장의 경험을 연결해 미래 지향적인 스포츠 정책 담론을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