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의 감성, 골프美학] 카이로스(Kairos), 크로노스(chronos) 시간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스포츠

MHN스포츠,

2025년 12월 13일, 오전 05:05

"와! 시간 정말 빨리 가네. 1월이었나 싶었는데 벌써 12월이니 말이야."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시간을, 쏜 화살로 표현했던 시인 롱펠로우의 시 내용을 빌리지 않더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선명하다.

지금 현대인들의 삶은 전조등만 밝힌 채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간다. 고사성어로 표현하면 주마간산(走馬看山)이다. 너무도 바쁘게 살다보니 나의 내면이나 감정을 돌아볼 시간 없이 오로지 성공과 목표만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달려만 가는 것이 아니라 가속 페달까지 밟으며 가고 있으니 곧 탈선은 명약관화이다.

우린 살아가면서 얼마나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쳐야 할까. 우리 우매한 인간은 그저 현재 시각만 나타내는 시간에만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흘러가는 시간을 뜻하는 크로노스(chronos), 특별한 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했다. 우린 사실 지금도 흘러가는 시간에 매달려 인간이 꿈꾸는 탐욕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난 시간이 아까워서 골프장은 절대 안가잖아. 골프만큼 미련한 스포츠는 없어."

아는 지인은 늘 만나면 같은 말을 한다. 하지만 그 지인은 골프하는 시간보다도 술과 게임하는데 더 쓰고 있다. 물론 자신의 취향을 헐뜯을 생각은 없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지인은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과 뒤돌아 봄 없이 달려오다가 어느 순간 죽을 것 같아서 골프를 시작했다고 한다. 골프장은 달리는 것이 아니라 걷고,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쓰는 곳이어서 여유가 있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렇게 달리는 것도, 뛰는 것도 사실 돈을 벌어서 쓰려하는 것인데 하나도 쓰지 못하고 벌기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는 어느 삶의 끝에 와서 진정한 자아와 연결되지 못해 진하게 다가오는 허무감과 외로움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다가 삶을 마감한다.  

필자 역시 얼마 전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 톱10에 들만큼 빼곡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트롯왕자 장민호와 커피를 마셨다. 그 때 장민호는 "정말 하나 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멀티로 그렇게 바쁘게 사냐며 이제는 좀 천천히 가시지요"하며 진심어린 말을 건넸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달려온 속도에 취해 얼마나 달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장민호의 말 한 마디가 다운시프트(downshift)하게 만들어 줬다.

삼사십 년 전에 보았던 영화 '폭주기관차', '스피드' 영화가 생각난다. 한 번 올라탄 기관차와 버스에서 내릴 수도 없다. 멈출 수 없다면 모두 죽어야 하는 영화 속 장면은 이미 우리에겐 현실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좀 더 나를 돌아보고 새로운 나를 위해 인생 속도를 줄여할 때이다. 달리며 바라보았던 산만 보지 말고 그 산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과 곤충 그리고 작은 이끼류를 보면서 원시본능을 키워야 한다.

그 자연의 집합체가 바로 골프장이며 그 골프장 안에서 일어나는 대자연의 기적들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올해가 가기 전에 깨달았으면 한다. 그냥 흘러가는 크로노스 시간이 아닌, 나만의 특별한 시간인 카이로스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대 직장인은 10명 중 8명이 시간에 쫓기는 듯한 '시간병(Time-Sickness)'에 시달리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미하엘 엔더의 '모모' 소설이 바로 시간 도둑들인데 우리가 지금 시간을 도둑맞은 채 허무하게 인생을 빼앗기고 있다. 박경리 선생은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라고 소회했다.

2025년 1월이 어제 같았는데 벌써 12월의 간두에 서 있다. 앞만 보고 달릴 것이 아니라 가끔은 불어오는 바람밀도도 느끼고, 풀 향기도 맡으면서 천천히 걸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 파라다이스가 바로 골프장이다. 그곳엔 우리가 꿈꾸는 사랑과 행복과 웃음이 있다. 

글, 이종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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