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들은 말한다. “이 시대의 진정한 서비스는 사망했다”고 우려를 표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경험했던 서비스는 ‘개인적으로 남을 위하여 돕거나 시중을 드는 것’의 개념이 컸다. 남을 돕고 시중을 드는 것이 서비스이다 보니 재화를 받은 측은 억울해도 모든 것을 다 인내하고 참아야 했다.
세상은 늘 균형을 원한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부터 “고객이 반말을 하면 저희도 반말로 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업장에 붙기 시작했다. 이후 서비스는 다시 균형을 이뤘다. 아니, 혹자들은 이제 고객이 재화를 지불하고도 역서비스를 받아야 한다고 푸념한다.
물과 반찬은 ‘셀프’, 주문은 ‘키오스크’로 바뀌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각이다. 내 돈 주고 사 먹는 밥이, 이용하는 골프장에서 왜 내가 수고를 해야 하냐는 것이다. 소비자의 불만이 또 높아지고 있다.
이를 바라본 식당이나 골프장에서는 다시 요즘 들어 역마케팅의 일환으로 서비스 균형을 잡으려고 하고 있다. 높은 인건비와 주 52시간 근무 등으로 인해 줄였던 종업원을 다시 늘리고 있다. 서비스를 다시 확대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게 해서 매출을 다시 늘리겠다는 것이다.
맞다. 서비스는 소통이지 일방은 아니다. 계속해서 고객에게 키오스크와 셀프 요구가 당연시된다면 이건 불통이다. 이런 업장엔 손님이 다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난해 우연하게 접했던 감동스러운 기사가 생각난다. A학생은 아침마다 텀블러에 B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채워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해왔다. B커피숍 사장은 늘 활짝 미소를 띠며 “좋은 하루, 맛있게 드세요”로 응원했다.
A학생의 아버지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 손수 김밥과 과일을 싸서 커피숍 사장에게 전했다. 커피숍 사장은 눈물을 흘리며, 정말 요즘 장사도 안 되고 해서 힘들었는데 너무나도 힘이 된다며 SNS에 올린 내용이 기사화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이렇듯 서비스는 소통으로 이어져야 감동이고 충성심이 생기지, 절대 일방은 없다.
요즘 필자는 겨울철을 맞아 골프장과 기업에서 ‘디테일 감성 서비스’ 강의를 한다. 얼마 전 D회사에서 강의를 끝내고 식당에 갔는데 60대 중반의 직원께서 친절하게 메뉴를 설명해줬다. 또한 과식보다는 건강을 생각하라며 메뉴까지 추천해 주었다.
동행한 분께서 잔돈이 없어 5만 원권을 1만 원짜리 5개로 바꿔 달라고 하자 “괜찮다. 마음만으로도 감사하다”며 활짝 웃으셨다. 이렇듯 따뜻한 진정한 서비스는 참 오랜만이다. 식당을 나왔지만 감동을 막을 수 없어 결국 차에서 이것저것 챙겨서 감사의 마음으로 팁 2만 원과 함께 손편지를 써서 건넸다. 한사코 사양했지만 진정한 서비스가 제 마음을 움직였다고 하자 받으셨다.
그런가 하면 안성의 A골프장에서 서비스 교육을 했다. 임원을 비롯해 전 직원이 참석했고 교육 태도는 물론 강의 중간중간에 반응과 공감을 잘해줘 신이 났다. 더군다나 교육이 끝나고 식사 자리에 왼손잡이인 필자를 위해 수저가 왼쪽으로 세팅되어 있었다. 교육 시간에 이야기한 ‘특별한 관찰’ 강의가 바로 실천으로 이어진 것이다. 돌아오는 내내 마음속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경제적 용어에 ‘내부 마케팅’이 있다. 만족한 종업원만이 소비자를 만족시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부 고객인 종사원의 욕구 충족이 외부 고객인 소비자 만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내가 대우받기를 원한다면 상대부터 먼저 대우해줘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아니, 사람과 사람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세상이 바뀐다고 해도 서비스의 본질은 바뀌면 안 된다. 버디를 기록했을 때 기념품 하나를 내미는 행위보다는, 그가 어떻게 퍼트를 했는지를 기억하고 칭찬해주는 진정성이 바로 서비스이자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아닐까.
글, 이종현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