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SEN=고성환 기자] 사실상 혼자서 퀴라소 축구의 역사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퀴라소 골키퍼 엘로이 룸(37, 마이애미 FC)이 신들린 선방쇼를 펼치며 조국의 역사적인 월드컵 첫 승점 획득을 이끌었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지휘하는 퀴라소는 21일(한국시간) 미국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의 캔자스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E조 2차전에서 에콰도르와 0-0 무승부를 거뒀다.
남미 베네수엘라 북쪽 카리브해에 위치한 섬나라 퀴라소는 인구가 약 15만명에 불과한 소국이다. 과거 네덜란드의 식민지였지만 2010년 자치권을 부여받은 뒤 네덜란드 왕국의 구성국 지위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 왕실 일원들이 이번 경기를 현장에서 관전하기도 했다.
역대 월드컵 본선 진출국 중 '최소 인구 국가'인 퀴라소는 예상대로 에콰도르를 만나 고전했다. 경기 시작 3분 만에 에네르 발렌시아에게 완벽한 기회를 허용했지만, 룸의 결정적 선방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후로도 에콰도르가 계속해서 두드렸다. 이날 에콰도르는 75%에 달하는 점유율을 바탕으로 90분간 슈팅 27개(유효 슈팅 15개), 기대 득점(xG) 3.05를 기록하며 시종일관 공세를 퍼부었다.
하지만 끝내 스코어는 바뀌지 않았다. 베테랑 골키퍼 룸이 에콰도르의 모든 슈팅을 막아냈기 때문. 그는 무려 15개의 선방을 기록하며 퀴라소에 귀중한 승점 1점을 안겼다.
이는 월드컵 새 역사이기도 하다. 축구 통계 매체 '옵타'는 "룸은 에콰도르와 경기에서 선방 15회를 기록했다. 이는 연장전이 없는 월드컵 경기에서 그 어떤 골키퍼도 기록한 적이 없는 최다 선방 기록(1966년 이후)이다"라고 조명했다. 2014 브라질 대회 16강 벨기에전에서 미국 골키퍼 팀 하워드가 선방 16회를 기록한 적 있지만, 이는 연장전(4회) 포함이었다.
이로써 FIFA 랭킹 82위 퀴라소는 처음으로 나선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승점을 따내며 1무 1패가 됐다. 앞선 경기에선 독일을 상대로 동점골을 넣고도 1-7로 대패하며 아쉬움을 삼켰지만, 이번엔 끈질긴 수비와 조직력으로 FIFA 랭킹 23위 에콰도르의 발목을 잡는 데 성공했다.


이름도 생소하던 퀴라소의 저력을 보여준 룸. 그는 종료 휘슬이 불린 뒤 무릎을 꿇은 채 감격했고, 동료들과 껴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이번 대회 최고령 감독 아드보카트 감독도 활짝 웃었다. 네덜란드 '스포르트니우스'는 "퀴라소가 월드컵에서 역사적인 이변을 일으켰다"고 강조했다.
경기 최우수 선수로 뽑힌 룸은 "골키퍼로서 거의 완벽한 경기였다. 나 혼자 만든 결과가 아니다. 팀 전체가 함께 해낸 일"이라며 "이제 퀴라소에 내 동상을 세워야 할 것 같다"라며 웃었다. 그는 "하워드의 기록을 넘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그는 아마 TV 앞에서 진땀을 흘렸을 것"이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아드보카트 감독도 "룸은 약간 화가 나 있었다. 아마 앞으로 매 경기 전에 그를 화나게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막아낸다면 말이다"라며 "선수단과 섬(퀴라소)에게는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얼마나 먼 길을 왔는지 경기 초반부터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 이런 강팀을 상대로 이런 결과를 얻었다"라고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한편 기적을 쓴 룸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킥오프 전까지 수천 명에 불과했지만, 벌써 80만 명에 이르렀다. 스페인을 상대로 환상적인 선방쇼를 펼치며 인스태그램 팔로워 수가 5만 명에서 1500만 명 가까이로 늘어난 카보베르데 골키퍼 보지냐처럼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른 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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