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가 싫었다”던 딸 김보미, 아버지 앞에서 7년 한 풀었다

스포츠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26일, AM 11:23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당구가 너무 싫은 적도 있었어요. 연습할 때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오랜 기다림 끝에 첫 우승을 이룬 여자 프로당구(LPBA) 김보미(NH농협카드)는 우승 인터뷰에서 힘겨웠던 시간을 떠올렸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7년 4개월. 세 차례 결승에서 고개를 숙였던 그는 63번째 투어에서야 웃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이 보상처럼 다가온다”는 말에 길었던 기다림이 그대로 묻어났다.

LPBA 첫 우승을 이룬 김보미가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PBA
LPBA 첫 우승을 이룬 김보미가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PBA
김보미가 프로당구 데뷔 7년 만에 첫 우승을 이루자 관중석에 있던 아버지 김병호가 울면서 딸을 축하해주고 있다. 사진=PBA
김보미가 프로당구 데뷔 7년 만에 첫 우승을 이루자 관중석에 있던 아버지 김병호가 울면서 딸을 축하해주고 있다. 사진=PBA
김보미는 25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27시즌 NH농협카드 챔피언십 결승에서 임정숙(크라운해태)을 세트 점수 4-3으로 꺾었다. 먼저 세 세트를 내주고 네 세트를 내리 따낸 대역전승이었다.

0-3으로 몰린 벼랑 끝에서 그를 붙잡은 것은 우승 욕심이 아니었다. 한 세트만이라도 이기자는 간절함이었다. 김보미는 “0-4로 지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니 한 세트만이라도 이기자는 생각이었다”며 “한 세트만 가져가면 내 당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힘겹게 4세트를 따낸 뒤에도 우승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김보미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 세트도 지금처럼 해보자는 생각이었다”면서 “마지막 공을 치는 순간마저도 우승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김보미는 앞서 세 차례나 결승에 올랐다. 하지만 우승을 눈앞에 두고 고개 숙였다. 팬들과 주변 사람들은 ‘운이 없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탓했다. “결국 실력이 부족했다고 느낀다. 강한 정신력을 가진 선수도 마지막 순간에는 떨리기 마련이다”며 “정신력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실력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돌아봤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익숙한 기술을 고치기 시작했다. NH농협카드 팀동료이자 리더인 조재호에게 배웠다. 아버지인 프로당구 선수 김병호에게도 몇 년 만에 다시 지도를 받았다. 초반 성적이 나오지 않아 불안했지만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바꾼 기술을 완전히 익히려면 1~2년은 성적이 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마음먹었다.

김보미는 “점점 엉킨 실타래들이 풀려가고 있다고 느꼈다”며 “이번 대회에서 연습한 것들이 드디어 제대로 나온 것 같아서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아버지에게 다시 당구를 배우기로 한 결정은 쉽지 않았다. 김보미는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당구를 시작했다. 운동을 좋아했지만, 몇 달 동안 공을 치는 기본 동작만 반복하는 훈련은 버거웠다. 엄한 가르침 속에 부녀 사이도 멀어졌다. 성인이 된 뒤에는 다투기도 했고, 몇 년 동안 말을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김보미는 “가족이랑 무언가를 같이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아버지가 아닌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먼저 손을 내민 쪽은 아버지였다. 김병호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직접 잡아주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화를 내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김보미도 고민 끝에 아버지를 믿고 다시 배웠다. 그는 “그래도 살짝 짜증을 내신 적은 있다”며 웃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마음도 달라졌다. 김보미는 “당구를 싫어하는 딸을 억지로 시키려 했으니 아버지도 힘들었을 거다”며 “최근에는 아버지가 나를 존중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잔소리는 하시지만 나를 믿어준다는 게 느껴진다”고 말한 뒤 미소를 지었다.

결승전 막바지에는 관중석에 있던 아버지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보미도 마음이 두근거렸다. 자신 역시 과거 아버지의 경기를 편하게 보지 못하기에 그 마음을 알았다.

우승 뒤에는 아버지의 칭찬이 쏟아졌다. 김보미는 “주변 분들이 아버지가 내 칭찬을 많이 한다고 하셨는데, 내게 직접 칭찬을 해준 게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때 원망했던 아버지지만 이제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당구가 싫었던 시절에도 김보미는 큐를 놓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연습은 힘들어도 경기는 재미있었다. 주변에서 당구를 즐기는 선수들을 보면서 자신도 생각을 바꿨다. 첫 우승은 그 변화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번 우승은 큰 전환점이 될 것 같다. 당구를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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