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시인 빅토리아 베넷이 삶이 안겨주는 고통 속에서도 정원을 가꾸어나간 10년을 회고하는 자연 에세이로, "부서진 땅에서도 왕성하게 자라난 희망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지난해 노틸러스 도서상 은상을 수상했고 알라딘에서 유명 독서가 106인을 모집해 기획한 '21세기 최고의 책' 중 한 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들풀의 구원|빅토리아 베넷|김명남 옮김|웅진지식하우스
저자는 삶이 주는 상실의 순간들을 야생의 정원을 가꾸는 작업과 연결해낸다. 언니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계속되는 유산 끝에 태어난 아이가 당뇨병을 진단 받는다. 시인인 저자에게 가난은 당연한 듯 뒤따라온다. 저자는 시골 마을의 공공 주택 단지로 이사해 돌무더기의 땅을 들풀의 터전으로 가꾸어낸다. 비싼 모종을 구매할 수 없었기에 들풀의 씨앗을 모으고 자생하는 식물들을 뿌리째 발굴해 자신의 마당에 옮겨심는다.
다채로운 들풀이 자라나고 새로운 생명이 날아드는 정원에서 저자는 자연히 회복의 실마리를 얻는다. “이 교란되고 망가진 땅에서도 무언가 자랄 수 있다는 믿음"이 상실과 고통에 파묻혀 있던 삶을 생명력으로 피워낸다. 정원의 경이 속에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라나는 아들을 돌보고 언니를 애도하며 저자는 확신한다. “우리는 망가지지 않았다.”, “때로 우리 삶은 부서짐에도 불구하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서진 덕분에 자라날 수도 있다.”
저자는 90가지 들풀의 이름과 모습, 약초학에서의 쓰임과 그것의 주술적 의미를 함께 수록하여 이들을 자신의 이야기와 연결하는 독특한 구성을 선보인다. 회복력을 상징하는 데이지, 역경에 맞서는 서양민들레, 외로움을 물리치는 붉은장구채 등 거론되는 들풀들은 판화 그림과 어우러져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동시에 깊은 울림을 전한다. 더불어 삶과 죽음, 모성, 여성으로서의 삶과 연대 등 생의 여러 층위들을 유려한 문장으로 오간다.
삶을 견디기 위한 분투와 씨앗을 심는 작은 움직임이 우리를 구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건네는 회고록이다. 한 사람의 구체적인 경험을 통과한 자전적 이야기가 슬픔뿐 아니라 환희와 경이 또한 우리의 숙명임을 알려준다. 삶이 망가진 폐허로 여겨질 때 필요한 재생과 위안이 양분처럼 담겨 있다.
책속에서
▶ '씨앗 7, 내 모든 야생의 어머니' 중에서
우리는 구근 하나마다 희망을 하나씩 심는다. 꽃을 피우는 구근이 하나 있다면 썩어버리는 구근도 하나 있다는 것, 싹을 틔우는 씨앗이 하나 있다면 엘더나무에서 기다리는 새들이 먹어버리는 씨앗도 하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렇다면 그냥 심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자라리라고 믿는 것만으로 충분한 게 아닐까? 나는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 그 마음을 내려놓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은 한 단위의 기쁨과 한 단위의 슬픔으로 이뤄진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행복의 봉우리란 없고, 성취해야 할 완벽한 삶도 없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어지럽고 끔찍하고 아름다운 삶뿐이며, 나는 이 삶에 감사한다.
▶ '씨앗 7, 내 모든 야생의 어머니' 중에서
사진=웅진지식하우스
편집자 주: ‘오늘의 책’은 매일 한 권의 도서를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연재 코너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선정해 깊이 있는 정보와 함께 독서의 즐거움을 전해드립니다. 국내소설 , 외국소설, 에세이·시집, 인문, 예술, 아동·청소년, 이 주의 신간을 기본 카테고리로 도서가 소개됩니다.
'오늘의 책'이 독자 여러분의 하루를 더욱 충만하게 만들어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