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폰에서 ‘구글지도’로 서울 시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로이터·뉴스1)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구글 지도 개방을 주장하는 측은 무엇보다 외래 관광객의 ‘디지털 불편’을 가장 먼저 지적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23 외래관광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 여행에서 가장 불편했던 영역은 ‘교통·관광안내·디지털 정보 접근’이었다.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김득갑·박장호 교수)은 최근 관광학회지 ‘관광레저연구’에 게재한 연구 논문에서 “구글 지도 사용이 허용될 경우 2027년까지 최대 680만 명의 외래 관광객이 추가 유입돼 관광수입이 226억 달러(약 31조원)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도 기반 여행 플랫폼 데이트립의 윤석호 대표는 “외국인들은 보통 여행 전에 구글 지도로 여행 동선을 설계한다”며 “한국 로컬 지도 앱은 외국인들에게 낯설고, 회원가입 등 장벽이 높아 플랫폼 확장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해외에서 호텔·레스토랑 예약이 기능한 구글은 단순한 지도 서비스 이상의 관광 인프라라는 설명이다. 이연택 한양대 명예교수는 “산업 발전의 핵심은 보호가 아니라 혁신”이라며 “글로벌 표준과 경쟁하지 않고선 생태계는 더 크게 후퇴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반면 구글 지도 개방은 ‘공간 정보 주권’을 외국 기업에 넘기는 ‘위험한 선택’이라는 반대 논리도 거세다. AI(인공지능) 기반 공간지능 플랫폼을 개발 중인 스페이셜코어 이종훈 대표는 “지도는 숙박, 음식, 교통, 헬스케어 등 거의 모든 분야와 연관된 산업 혈관”이라며 “구글 지도 개방은 한국 산업의 심장 일부를 구글에 내주는 꼴”이라고 경고했다.
여행상품을 유통 판매하는 트래볼루션 배인호 대표 또한 “지도 서비스는 한번 쓰면 전환이 어려운 데다 기술 종속이 심화될 수 밖에 없다”며 “구글의 지도 API 사용료는 국내 서비스보다 최대 100배 비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우려했다.
구글의 국내 조세 회피 논란 역시 다시금 수면 위로 올랐다. 구글은 매년 수천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도, 국내 법인을 통한 법인세 납부에는 매우 소극적이다.
구글코리아는 2023년 약 3869억원 매출에 173억원의 법인세를 냈다. 같은 기간 네이버는 3902억원, 카카오는 1590억원을 납부했다. 국토지리정보원 관계자는 “이번 반출 보류 결정 배경에는 구글의 조세 문제에 대한 이견도 일부 작용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도 데이터를 원한다면 국내 법인을 설립하고 세금을 납부하라”는 입장이지만, 구글은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는 ‘공정 경쟁 원칙’ 위반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으며, 국내 기업 역차별 논란으로도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논쟁을 단순한 찬반 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협의체 논의에 참여했던 한 지도 전문가는 “구글에 지도를 전면 개방하면 국내 관광벤처는 글로벌 플랫폼에 의존하게 되고, 장기적으로 산업 자립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며 “상호주의 원칙에 따른 단계적·조건부 개방만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구글이 국내에 법인을 두고, 국내 클라우드 서버를 이용하며 일정 비율의 수익을 국내 데이터 기업과 공유하는 조건을 통해 제한적 활용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공간정보 정책 전문가는 “완충장치 없는 지도 반출은 뛰어난 알고리즘을 가진 글로벌 기업에 ‘정답지를 공짜로 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일본·EU, ‘조건부 개방’과 자국 산업 보호 병행
일본은 구글 지도 반출을 허용하면서도, 자국 기업인 ‘젠린’(ZENRIN)과의 협업을 통해 데이터 원천은 자국에 두도록 조건을 붙였다. 유럽연합(EU)도 공간정보와 관련한 GDPR(개인정보 보호법) 조항을 강화해, 위치 정보의 제3국 반출 시 승인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는 ‘개방’과 ‘보호’라는 상충 가치를 조화시키려는 국제적 시도이며, 한국도 이 같은 다층적 전략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전문가들은 향후 공간정보법 개정, 산업주권 보호를 위한 상시 협의체 설치, 관광산업 내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 규제 기준 수립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이번 문제는 관광산업의 기술 기반을 누가 소유하느냐의 문제”라며 “장기적으로는 산업 생태계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되는 만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