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기의 ‘무제’(1979). ‘비디오’라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매체를 돌, 더 엄밀하게는 전통적인 동양정신 위에 올려놨다. 서낭당이나 사찰 인근에 쌓아두는 돌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작품은 ‘실재하는 돌’과 ‘모니터 영상 속 돌’ 사이에서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허상인지 구분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돌이 아니어도 작가는 나무·물·철판 같은 동양적인 물질을 TV 모니터와 결합해 변증법적 ‘합’을 이루는 데 몰두했다. 지난 5월 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막한 ‘MMCA 서울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에 걸렸다. 돌(14개), 모니터(1대), 120×260×26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정하윤 미술평론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는?”
종종 하는 설문조사에서 1위는 대개 백남준(1932∼2006)이 차지한다. ‘가장 유명한 미술가’ 역시 백남준이다. 교과서에까지 등장하는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은 분명 우리의 자랑스러운 미술가다. 그런데 백남준만큼이나 혁신적이면서도 한국미술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예술가가 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누구보다 앞서 실험적 예술을 개척했던 인물. 한국 미디어아트의 선구자 박현기(1942∼2000)다.
194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박현기는 세 살 무렵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일제강점기 아버지가 강제 징용되면서 가족 모두가 일본으로 이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고향인 대구로 돌아온 것은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얼마 전이었다.
말수가 적고 손재주가 뛰어난 아버지를 닮은 박현기는 어린 시절부터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며 일찌감치 미술에 재능을 드러냈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에서 전업 미술가의 꿈을 키우기는 쉽지 않았을 터. 대구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해 기계설계를 전공했다. 그래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는 없었나 보다. 끝내 홍익대 미대 서양화과에 진학한 걸 보면 말이다.
서울 유학은 고생의 시작이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박현기는 인테리어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결국 건축학과로 전과했다. 당시 홍익대에서 강의하던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의 영향도 있었고 생계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도 작용했을 거다.
졸업 후 서울에 자리 잡는 대신 대구로 돌아온 박현기는 ‘큐빅’이란 사무소를 차리고 건축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했다. 작가로서의 꿈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건축업으로 번 돈을 고스란히 예술작품 활동에 쏟아 부으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져 나갔다. 청춘 내내 현실과 꿈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돌고 돌았던 박현기는 돈이 없다고 주저앉는 대신 이렇게 스스로 후원하며 예술가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그런데 박현기가 사업에서 번 돈을 가장 많이 들인 건 그림도구가 아니었다. 모니터와 카메라 등 미디어 장비를 구입하는 일이었다. 특히나 비디오 캠코더는 희귀하고 값비싼 첨단 장비였다. 1970년대 당시 정부는 국가기밀 촬영 우려로 이들 장비에 대한 유통과 구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그럼에도 이 ‘요물’을 반드시 구해야만 했던 것은 비디오가 갖는 예술적 가능성을 박현기는 일찍부터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부터 한국 주무대로 영상·설치 작업
백남준의 영향이었다. 1974년 여름 박현기는 대구 미국문화원 도서관에서 백남준의 ‘지구의 축’(Global Groove 1973) 영상을 접한 뒤 큰 충격을 받았고 자신 또한 이 영역을 탐구해야겠다는 열정이 일었다. 즉각 실행에 옮겼다. 1978년 박현기는 비디오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 다녀왔고 이내 비디오를 활용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백남준이 독일·미국 등 외국에서 활동하다 1984년에야 한국에 드나들기 시작했던 반면, 박현기는 1970년대부터 한국을 주무대로 영상과 설치를 접목한 독특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즈음 발표한 대표작이 ‘무제’(1979) 등을 비롯한 ‘비디오 돌탑’ 연작이다. 실제 돌탑 사이사이에 돌을 촬영한 영상 모니터를 끼워 넣은 작품으로 ‘현실의 돌’과 ‘모니터 속 돌’이 교차하는 하며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작품 앞에 선 이들은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허상인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내가 나비인지 인간인지 헷갈렸다는 장자처럼.

박현기의 ‘1980년 스케치북’ 중 부분(1978~1980). TV 모니터를 돌 사이에 박아 세운 설치작품 ‘무제’(1979)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엿보게 한 드로잉이 실려 있다. 1980년대부터 제작한 드로잉·스케치북은 200여 점에 달한다. 일부는 실현되기도 했고 일부는 아이디어 스케치로만 남았다. 종이에 연필·펜, 26×35.5㎝(22쪽).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실제로 박현기는 전통에 관심이 많았고 시간을 들여 익히려 애썼다. 대학 시절에는 여름방학마다 대구로 내려가 우리 전통을 배웠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교육을 거부한 채 독자적인 전통교육을 고수했던 ‘광거당’에서다. 졸업 후 낙향해서는 대구 이천동 고미술거리의 골동품가게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레 신라토기, 고려청자, 석물, 탱화 등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돌탑을 비롯해 어린 시절 보았던 돌무덤, 선돌, 절터 등 많은 유적과 촌락, 그 속에 살아온 마을 어른들의 의식도 중요한 예술적 자산이 되었다. 동양의 철학이나 돌탑 같은 형태가 작품에 녹아든 것은 이런 공부의 결과였다.
1990년대 중반 박현기는 디지털 영상 편집기술을 도입한 새로운 작품 시리즈를 선보였다. ‘만다라’(1997)라는 제목의 영상 작업이었다. 영상 속에는 벌거벗은 채 뒤엉킨 남녀와 천수관음보살 같은 종교적 도상이 빠르게 교차한다. 포르노와 불상의 혼합이라니 불경하다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실 이렇지 않은가. 종교와 성, 신성과 욕망 등 극단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만다라’는 제목 그대로 우주의 진리를 정확히 반영한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박현기의 ‘만다라 시리즈’ 중 스크린샷(1997). 불상이나 만다라 등 종교적 이미지와 수십 개의 포르노 영상을 겹쳐 빠르게 흘러가게 한 작업이다.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엄격한 구분조차 부질없는 그 너머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철학적인 질문과 깨달음을 앞세우는 작가의 작품에서 비디오는 첨단기술이 아닌 그저 매체였다. 단채널 영상·컬러·사운드, 30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기술은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 담아내는 그릇이었을 뿐
박현기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지만 한번도 기술 자체에 무게를 뒀던 적이 없다. 1970년대 비디오아트라는 장르를 처음 접하고부터갑작스럽게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쉰여덟인 2000년 1월 숨을 거둘 때까지 언제나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기술을 사용했을 뿐이다. 종종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미술에서 이는 중요한 포인트다. 작품에서 메시지가 아닌 기술이 먼저 보일 때 작품은 기계가 되고, 미술가는 기술자가 되기 때문이다. 박현기의 작품에서 핵심은 늘 그의 철학이었고 그 철학이야말로 그를 예술가로 만든 본질이었다.
40여 년 전 제작된 박현기의 작품들이 지금까지 여전히 동시대적으로 읽히는 이유 역시 기술이 아닌 메시지에 있다. ‘무엇이 실재인가’라는 ‘비디오 돌탑’의 질문은 모니터 속 세상이 실제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는 지금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극단의 이미지들이 교차하며 보는 이의 인식체계를 교란시키는 ‘만다라’는 점점 양극화하는 정보가 범람하는 우리 사회에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기술은 빠르게 변해도 박현기의 작품은 여전히 변함없이 깊은 울림을 전한다.
△정하윤 미술평론가는…
1983년생. 그림은 ‘그리기’보단 ‘보기’였다. 붓으로 길을 내기보단 붓이 간 길을 보려 했다는 얘기다. 예술고를 다니던 시절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푹 빠지면서다.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일찌감치 작가의 길은 접고, 대학원에 진학해 한국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내친김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이후 연구와 논문이 주요 ‘작품’이 됐지만 목표는 따로 있다. 미술이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란 걸 알리는 일이다. 이화여대·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미술교양 강의를 하며 ‘사는 일에 재미를 주고 도움까지 되는 미술이야기’로 학계와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려 한다. 저서도 그 한 방향이다. ‘꽃피는 미술관: 가을·겨울’(2025 출간 예정), ‘꽃피는 미술관: 봄·여름’(2022), ‘여자의 미술관’(2021),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2019),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2018)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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