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학의 대가 제발트의 글쓰기론... 신간 '기억의 유령' (오늘의 책)

생활/문화

MHN스포츠,

2025년 6월 03일, 오전 06:00

(MHN 이나영 기자) 주목할 만한 이 주의 신간으로 W.G. 제발트에 대한 에세이와 인터뷰를 엮은 도서 '기억의 유령' 개정증보판을 소개한다.

2001년 유력 노벨문학상 후보였던 독일의 작가 W.G. 제발트가 생전의 심층 인터뷰와 그에 대한 유명 평론가의 에세이를 엄선하여 이후 린 섀런 슈워츠가 엮은 도서. 

그는 단 네 권의 소설로 '제발디언'이라 불리우는 애호가를 낳을 정도로 독보적인 소설가였고,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 소식에 세계 문학계는 비탄과 충격에 빠졌다. 

 '기억의 유령'은 "독창적인 데다 완성된 소설가로 갑자기 난데없이 등장"했고 "기묘하고 불가해한 작가"였던 제발트 소설의 근원을 안내해주는 이정표와도 같은 도서. "폭력의 시대, 불가능의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의 소설을 관통하는 중요한 모티프가 된 버지니아 울프의 '나방의 죽음'과 카프카의 '사냥꾼 그라쿠스'가 함께 수록되었다.

■기억의 유령|W.G. 제발트|린 섀런 슈워츠 엮음|공진호 옮김|아티초크

최근 수십 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거론되는 제발트는 자신만의 새로운 글쓰기에 대해 '산문 픽션'이라는 이름을 고안했다. 현대 소설에 독일의 산문 전통을 부활시켜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형식인데, 이러한 경계 무화하기는 제발트에게 기억과 망각,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는 산 세계와 죽은 세계의 경계가 차단되어 있지 않다고 믿었다. 독일의 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 그는 제3제국 당시 나치 당원이었던 교수들이 과거를 회피하는 현실에 불만과 좌절감을 품었다. 나아가 조국의 "집단 기억 상실"과 "모의된 침묵"을 지적하며 기억을 가장 도덕적이며 정치적인 행위로 여겼다. 그의 소설 '이민자들'과 '아우스터리츠'에도 독보적으로 나타나는 인식이다. 

'기억의 유령' 속 제발트는 위와 같은 화두를 종횡하며 문학의 효용이 "기억을 돕고 어떤 일은 인과의 논리로 설명되지 않음을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뉴욕타임스는 제발트가 홀로코스트 이후 예술은 존재할 수 없다는 아도르노의 금언에 배치되는 인물이라고 평했는데, 그처럼 그의 글쓰기는 언어의 유혹적 힘을 발휘하면서도 과거를 회복하고 대체하는 것이었다.

여타의 창작 이론서에서는 얻을 수 없는 제발트만의 독창적인 글쓰기론이 가득한 도서. 수준 높은 인터뷰와 더불어 제발트만의 유머, 재치, 신랄함도 그 자체로 재미를 더해준다. 제발트 애호가뿐 아니라 입문자에게 진기한 주석이 되어줄 것이다.

책속에서

▶양심이 있는 사람들은 오래 살지 못하죠.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을 받거든요. 파시스트 지지자들은 아주 오래 삽니다. (중략) 저는 항상 제 부모님에게 소극적 저항과 소극적 부역은 서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애써 설명합니다. 그 둘은 같은 거라고요. 하지만 그분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해요.

▶개인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통제한다는 생각에 저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이 잘 정리되고 내 뜻대로 통제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다음 날 반드시 나의 모든 계획을 망치는 어떤 일이 생기더군요. 그런 일들이 반복됩니다. 내 인생은 내가 통제한다는 환상은 서른다섯 살쯤까지 계속되다 깨졌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통제하지 않습니다.

▶문학만이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나 학식을 넘어 회복의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사진=아티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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