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 이나영 기자) 주목할 만한 시집·에세이 도서로 철학자 김진영의 에세이 '아침의 피아노'를 소개한다.
미학자, 철학자, 철학아카데미 대표였던 김진영의 첫 산문집이자 유고집.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그가 병상에 앉아 썼던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의 일기 234편이 담겨 있다.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아침의 피아노|김진영|한겨레출판
본인의 글에 까다로운 나머지 역서와 공저 외에 저작이 없었던 노학자가 암 선고 이후 제자와의 모임에서 "남의 텍스트가 아닌 내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다지고, 이후 편집자와의 우연한 만남이 연속되면서 출간이 가능해진 도서다.
“그동안 이어지던 모든 일상의 삶들이 셔터를 내린 것처럼 중단되었다.”
선고의 순간이 분명하지만 단순히 투병 일기라고 요약할 수 없다. 평생 매진해온 철학, 문학, 미학의 텍스트를 건너는 마지막 공부이자, 정신에 당도하는 시선들에 대해 정직하게 기록한 글들. 선생은 자신을 위한 사적인 기록이기에 책의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도 "개인성이 위기에 처한 상황 속 개인의 내면은 또한 객관성의 영역과 필연적으로 겹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자문하며 공유될 기록의 의미를 가늠했다.
매일 아침 아들이 서재에서 피아노를 치던 고즈넉한 풍경은 그대로 책의 제목이 되었다. “아침의 피아노. 베란다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제 무엇으로 피아노에 응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틀렸다. 피아노는 사랑이다. 피아노에게 응답해야 하는 것, 그것도 사랑뿐이다.”
죽음의 기록은 생의 기록이다
소멸하는 몸으로부터 존엄과 자긍을 수호하는 방법은 생과 사랑을 긍정하는 일이었고 글쓰기를 지속하는 일이었다. "나는 기록으로 맞선다." “나와 운명 사이에서 해야 할 일들 (…)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기.” 선생은 그 마음을 거듭 반복하면서 비로소 마지막 문장에 당도한다. "내 마음은 편안하다"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도리어 발견되는 생의 면모들은 빛나는 아포리즘의 형태로 남았다. 짧고도 또렷한 사유들이 가장 적확한 형식으로 생을 담는 그릇이 되었다. 여백이 남은 문장들과 만날 때 우리는 고요한 파문 속에서 "긍지의 인간"으로 생을 다시금 의식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특별한 것들’이다. 그래서 빛난다. 그래서 가엾다. 그래서 귀하고 귀하다.”
책속에서
그러나 나의 몫임에도 부당하게 주어지지 않거나 빼앗겼을 때는 기필코 그 소유권을 되찾고자 했다. 환자가 된 뒤에도 나는 이 원칙에 충실히 하고자 했다. 나는 내 몸의 완전한 단독자가 되었고 그 몸은 타자들의 삶들과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었다. 이제는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안다. 나의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타자들의 것이기도 하다. 나의 몸은 타자들의 그것과 분리될 수도 격리될 수도 없는 것이다. 나의 몸은 관계들 속에서 비로소 내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내가 나의 삶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고 내 몫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고 근거이며 ‘환자의 정체성’이다. ▶79-80쪽.
지금이 가장 좋은 때다. 지금이 가장 안전한 때다. 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은 힘이 없다. 지금 여기가 아닌 것은 힘이 없다. 지금과 그때 사이에는 무한한 지금들이 있다. 그것들이 무엇을 가져오고 만들지 지금은 모른다. ▶252쪽.
사진=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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