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한복판에 터를 잡은 새로운 민주정치의 전당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5년 8월 15일, 오전 06:00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국회의사당 전경. 2025.4.8/뉴스1

197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제30주년 광복절을 맞아 새로운 국회의사당의 준공을 대내외에 알렸다. 1970년대 초반, 유신체제하에서 국회의사당 건설은 '국민적 합의'와 '국가 위상 강화'라는 명분 아래 추진됐다.

1961년 국회사무처가 국회의사당 건립 계획을 처음 수립한 지 14년 만에, 그리고 1969년 7월 기공식을 가진 지 6년 만의 일이었다. 이로써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임시로 사용하던 서울특별시 종로구 태평로의 옛 중앙청 건물 시대를 마감하고, 영등포구 여의도에 새로운 민주정치의 전당을 마련하게 됐다.

하지만 건립 과정에서는 여러 논란도 발생했다. 일각에서는 거액의 공사비가 국민 경제에 부담을 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국회의사당 돔의 높이를 두고 당시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정치를 안정시키는 데에는 낮은 돔이 좋다'는 주장과 '국가 위상을 높이기 위해 높은 돔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하기도 했다.

이 돔은 원래 설계안에는 없었으나 건물에 권위를 실어야 한다는 의견이 반영돼 추가된 것이었다. 이에 대해 건축가들은 누구도 동조하지 않았다. 또한 국민보다는 정치권의 귄위나 위세를 내세웠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결정이기도 했다.

준공식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 정일권 국회의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됐다. 박 대통령은 축사에서 "이 국회의사당은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이자 국민주권의 전당으로서, 민족중흥을 향한 영광스러운 전당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의사당은 '민주주의의 요람'이자 '국민의 전당'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완공됐다. 이는 기술적 성취와 정치적 상징성이 동시에 투영된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그러나 건립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논란은 당시 시대적 상황과 권력관계를 반영하는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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