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손프로젝트 단체 사진. 왼쪽부터 손상규, 양조아, 박지혜, 양종욱(LG아트센터 제공)
"감각적으로 와닿는 언어로 다듬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입센이 다루는 주제들이 당시엔 민감하고 금기된 이슈라, (원작에서는) 성병·매독 등이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고 에둘러 표현해요. 저희는 드러내는 방향으로 대사를 다듬었죠." '연극계 히트 메이커'로 불리는 양손프로젝트가 신작 '유령들'로 돌아왔다.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희곡 '유령'을 새롭게 각색한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박지혜는 "실제로 주고받는 말처럼 작동하도록 언어를 고쳤다"며 각색 방향을 설명했다.
21일 오후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양손프로젝트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2011년 결성된 양손프로젝트는 연출 박지혜, 배우 손상규·양조아·양종욱 4인으로 구성된 공동창작 집단이다. 작품 선정부터 각색·연출·연기까지 네 사람이 전 과정을 함께하는 공동창작 방식을 고수한다. '전락' '데미안' 등 주로 소설을 무대화한 작업을 통해 독자적인 연극 세계를 구축했으며, 두꺼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신작도 넷이 함께 원작을 번역하고, 분석하며, 두 달 넘게 대사를 다듬는 등 치열한 과정을 거쳐 무대에 올렸다. 손상규는 "처음 작품을 읽었을 때 그 시대엔 쇼킹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을 것 같더라"라며 "'그렇다면 관객에게 어떻게 와닿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했다. 이들이 각색에 공을 들인 이유였다.

배우 손상규(LG아트센터 제공)
입센의 여러 작품 가운데 '유령'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손상규는 "입센의 글은 날카로우면서도 군더더기가 없더라"라며 "장식이나 미사여구 없이, 하고 싶은 말을 직선으로 던지는 작가라 저희 취향과도 잘 맞았다"고 설명했다.
양조아는 "예전부터 입센의 '유령'을 좋아했다"며 "20대 때 이 작품을 읽으며 '나는 어떻게 하면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고리들을 끊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 고민과 싸우고 있더라"라고 했다. 이어 "이 고민은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 인간의 숙제 같다"며 "'유령'은 기꺼이 부딪혀 풀어내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유령들'은 1881년 노르웨이의 한 시골 마을, 알빙 부인의 저택에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원작 '유령'의 노르웨이어 원제 'Gengangere'(옌강에레)는 '돌아오는 자'를 뜻하는데, 이는 인물들의 삶을 억압하는 과거의 관습과 관념 같은 잔재를 가리킨다. 입센은 19세기 중반, 개인을 규정짓던 종교와 도덕을 비판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
제목을 복수형으로 바꾼 이유에 대해 손상규는 "'유령들'이라고 했을 때 더 구체적인 존재들이 있다고 느껴진다"며 "'유령'이라고 뭉뚱그리지 않고 구체적으로 인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유령들' 공연 사진(LG아트센터 제공)
공연은 무대를 4면 객석이 둘러싼 형태로 구성했다. 이 때문에 관객은 마치 알빙 부인의 집 거실에 둘러앉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박지혜 연출은 "이 안에서 벌어지는 다이내믹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게 중요했다"며 "시선이 얽히고설키다 보면 따라가기 바빠지지만, 그 과정에서 관객이 네 방향 모두에서 능동적인 참여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알빙 부인'을 연기하는 양조아는 "4면 무대는 숨을 곳이 없다"며 "그런 환경이 알빙 부인이 느꼈을 압박감과 긴장감을 체감하게 해줘, 인물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치열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것으로 유명한 양손프로젝트지만, 그들이 공유하는 뚜렷한 지향점이 있다. 박 연출은 "저희는 어떤 선언이나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경계한다"며 "인간의 모습에 주목하되, 반드시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거나 강하게 말해야 한다는 태도는 피하려 한다"고 말했다.
양종욱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며 "내용이나 의미가 아무리 좋아도 우리에게 어떤 감각을 주지 못한다면 '재미없어, 버려!'가 된다"며 웃었다.
"입센도 울고 갈 각색", "환상적인 무대 구성"과 같은 관람 후기가 이어지고 있는 '유령들'은 오는 26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유플러스(U+) 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

양손프로젝트(LG아트센터 제공)
js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