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 히트 메이커’ 양손프로젝트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희곡 ‘유령’을 각색한 ‘유령들’로 돌아왔다.
21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라운드인터뷰에서 박지혜 연출은 “200년 전 사람들을 억눌렀던 ‘유령’ 같은 사회적 시선과 비난의 공포가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며 이같이 밝혔다.
2011년 결성된 양손프로젝트는 박 연출과 배우 손상규·양조아·양종욱이 함께하는 4인 공동창작 집단이다. 작품 선정부터 각색, 연출, 연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창작 과정을 네 사람이 공동으로 수행한다. ‘전락’ ‘데미안’ 등 소설을 무대화한 작업들을 통해 고유한 연극 세계를 구축했으며,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양손프로젝트의 양종욱(왼쪽부터), 양조아, 박지혜, 손상규(사진=LG아트센터).
원작 ‘유령’(1881)은 노르웨이 시골 마을의 대저택을 배경으로, 헬렌 알빙 부인의 집에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남편의 타락한 삶을 체면 때문에 평생 숨기며 살아온 알빙 부인은 아버지를 닮을까 두려워 외국으로 보냈던 아들이 돌아오면서 과거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아들은 배다른 누이인 하녀에게 욕망을 드러내며 여전히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선천적 매독으로 쇠약해진다. 입센은 작품을 통해 개인을 규정하던 종교와 도덕, 가족이라는 이름의 위선을 비판하며, 과거의 ‘유령’들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파멸로 몰아가는지 보여준다.
네 사람이 원작을 함께 분석하고, 두 달 넘게 대사를 다듬은 끝에 무대에 올렸다. 박 연출은 “감각적으로 와닿는 언어로 대사를 재구성하는 데 집중했다”며 “원작이 성병·매독 등을 에둘러 표현한 것과 달리,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다듬었다”고 설명했다. 입센의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손상규는 “입센의 글은 장식 없이 날카롭고 직선적으로 메시지를 던진다”며 “그래서 우리의 취향과도 잘 맞았다”고 설명했다.
무대는 관객이 사면을 둘러싸고, 흰색 바닥 위에는 검은 가구만이 놓여 있다. 박 연출은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네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은 인물을 극한으로 몰아 심리를 드러내는 효과가 있다”며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5개의 역할은 3명이 나눠 맡으며, 한 배우가 두 인물을 연기하기도 한다. 양조아는 “어릴 때부터 타인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웃음으로 감정을 포장해왔다”며 “진짜 욕망을 드러내지 못하는 순간마다 ‘유령’을 만나고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 선택을 지키기 위해 유령과 같은 억압과 끊임없이 싸우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이들을 끈끈하게 이어준 동력은 무엇일까. 이들은 매번 모임을 ‘퍼니 스토리’로 시작하며 서로의 일상과 취향, 생각을 공유해 왔다. 이 루틴은 단순한 수다를 넘어 진지한 토론으로 이어지며 팀의 유대감과 신뢰를 깊게 만든 비결이 됐다고 한다. 박 연출은 “독특한 인물을 흉내내거나 가족 문제부터 연극계 이슈·사회적 사건까지 다양한 주제를 자유롭게 나눈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를 자연스럽게 더 깊이 이해하게 됐고, 그만큼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연극 ‘유령들’의 한 장면(사진=LG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