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츠 리스트. (출처: Franz Hanfstaengl, 1858,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811년 10월 22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헝가리의 라이딩(현 오스트리아 부르겐란트 주)에서 프란츠 리스트가 태어났다.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역사상 최고의 테크닉을 구사한 피아니스트였다.
리스트는 불과 아홉 살에 첫 공개 연주회를 가질 정도로 신동이었다. 이후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빈으로 건너가 카를 체르니에게 피아노를,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작곡을 배웠다. 특히 1823년 빈에서의 연주회에서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격려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1830년대 초 니콜로 파가니니의 바이올란 연주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충격을 받은 리스트는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기로 결심하고 피아노 연주 기법을 혁신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최초의 아이돌급 음악가였다. 그의 연주회를 통해 '피아노 리사이틀'이라는 현대적 개념이 정립됐다.
리스트는 작곡가로서도 혁신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는 고전적인 악곡 형식을 벗어나 문학적, 회화적 아이디어를 음악으로 표현한 '교향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시했다. '전주곡', '타소, 비탄과 승리', '파우스트 교향곡', '단테 교향곡' 등이 이 장르의 대표작이다.
그의 피아노 작품들은 연주 기술의 극단을 보여주는 '초절기교 연습곡'과 헝가리 집시 음악의 정서를 담은 '헝가리 광시곡', 그리고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사랑의 꿈 3번', '라 캄파넬라' 등으로 유명하다. 특히 '피아노 소나타 나단조'는 단악장 구성 속에 복잡하고 깊이 있는 음악 세계를 담아낸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리스트는 1848년 연주 여행을 은퇴하고 바이마르 궁정에서 활동하며 작곡과 지휘에 집중했다. 리하르트 바그너, 샤를 구노 등 당대 많은 예술가와 교류했으며, 수많은 제자를 무상으로 가르쳐 후학 양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는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의 지평을 넓힌 거장으로 영원히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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